다양한 생존의 언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본문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낸다.
목소리가 커지고, 상대를 비난하며 자신의 옳음을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은 뒤로 미룬다.
그렇게 참다가 결국 눈물로 마음을 표현하고 관계를 떠난다.
겉으로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생존전략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아이는 갈등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노를 선택한다.
분노는 두려움을 가리고, 무력감을 견디게 하며,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법을 배운다.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서운함은 뒤로 미룬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존전략은 가족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허용하는 감정의 범위 역시 아이의 감정 표현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에는 오랫동안 남성에게는 강인함을, 여성에게는 배려와 순응을 기대하는 문화가 존재해 왔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떤 감정은 표현해도 되고, 어떤 감정은 숨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배우기도 한다.
남자아이가 울면 "남자가 왜 우느냐."는 말을 듣지만, 화를 내는 모습은 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슬픔은 분노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여자아이가 화를 내면 "예민하다.", "까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갈등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신의 분노를 직접 표현하기보다 눈물이나 인내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가족과 사회가 허용하는 감정의 범위는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늘 화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인과 갈등이 생겨도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했다.
상대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마음은 조금 더 참으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표현되지 못한 마음은 차곡차곡 쌓였고,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 눈물과 함께 관계를 끝내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 보면 원가족의 경험이 현재의 관계와 이어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의 좋지 않은 습관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참고 견디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하며 가족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고,
이후 어머니의 무책임한 행동을 목격하면서부터는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그 경험 속에서 아이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안쓰럽다는 마음.
그리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을 겪게 했는지에 대한 분노.
하지만 그 분노를 그대로 느끼기에는 어머니는 이미 너무 힘든 사람이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화가 아니라 어머니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분노는 뒤로 미뤄지고,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능력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그는 "화가 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분노를 느끼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진 것이다.
분노는 의식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서의 깊은 층에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반대로 쉽게 화를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족치료 현장에서는 비난을 통해 자신을 지탱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상대를 비난하고 분노를 쏟아내며 자신을 방어한다.
하지만 신뢰 관계가 깊어져 방어가 조금씩 내려가면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펼쳐진다.
분노 아래에 있던 슬픔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은 너무 외로웠어요."
"무서웠어요."
"계속 버티고 있었어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눈물이 흐르고, 잔뜩 긴장했던 몸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압력이 서서히 내려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분노는 공격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던 생존의 압력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은 울지 못해 화를 냈고,
또 다른 사람은 화내지 못해 울었다.
한 사람은 분노를 통해 자신을 지켰고,
다른 한 사람은 공감을 통해 관계를 지켰다.
방법은 달랐지만, 둘 다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상담은 사람에게 화를 가르치거나 눈물을 멈추게 하는 과정이 아니다.
분노 아래에 숨겨진 슬픔을 만나도록 돕고,
눈물 아래에 미뤄 두었던 분노를 안전하게 경험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사람이 건강해진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의 감정만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슬퍼야 할 때는 충분히 울 수 있고,
경계를 세워야 할 때는 건강하게 화를 낼 수 있다.
분노와 눈물은 서로 반대의 감정이 아니다.
그것들은 한때 가족과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생존의 언어였다.
그리고 상담은 그 언어를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그 언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 이해 위에서 사람은 비로소 생존이 아니라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감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