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걸게 만드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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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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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라고 하면 대부분 신체적 폭력을 떠올린다.
때리고, 밀치고, 위협하는 행동은 누구나 폭력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은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보이지 않는 폭력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 힘 있는 사람의 감정이 언제나 우선되는 문화.
이러한 구조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은 사람의 몸보다 먼저 존재를 위협한다.
그 시작은 대개 가족이다.
가족은 아이가 처음 만나는 사회이며, 권력을 처음 경험하는 공간이다.
누가 결정권을 갖는지, 누구의 말이 절대적인지, 누구의 감정이 존중받는지, 갈등은 대화로 해결되는지 아니면 힘으로 해결되는지.
아이는 이러한 규칙을 설명으로 배우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몸으로 익힌다.
어떤 아이는 강한 사람의 편에 서야 안전하다는 것을 배우고,
어떤 아이는 약한 부모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을 떠안으며,
어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믿게 된다.
이처럼 가족 안에서 형성된 관계의 방식은 학교에서도 반복된다.
학교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다.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자리를 찾아간다.
권위 앞에서 쉽게 위축되거나, 힘으로 관계를 통제하거나, 늘 중재자의 역할을 맡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난다.
그 관계는 성인이 되어 직장과 사회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충분한 성찰과 새로운 관계 경험이 없다면,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도 익숙했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 간다.
폭력은 그렇게 세대를 건너간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반복을 멈추고, 새로운 관계를 통해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운다.
그러나 폭력이 남기는 가장 깊은 흔적은 상처 자체가 아니다.
'존재를 걸어야 안전하다'는 믿음이다.
사랑받기 위해 존재를 걸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존재를 걸고,
인정받기 위해 존재를 걸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존재를 건다.
그래서 시험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존재의 심판이 되고,
직장은 생계를 넘어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는 곳이 되며,
관계의 갈등은 의견 차이가 아니라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로 경험된다.
사람은 목표가 중요해서 존재를 거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를 걸어야 살아남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다시 존재를 건다.
그래서 회복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회복은 존재를 걸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실수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거절해도 존중받으며,
의견이 달라도 버려지지 않고,
성과가 없어도 존재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는 경험.
행동은 함께 돌아볼 수 있지만 존재는 평가받지 않는 관계.
그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사람은 조금씩 새로운 사실을 배우기 시작한다.
"나는 존재를 걸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구나."
"완벽하지 않아도 관계는 유지될 수 있구나."
"실패해도 내 존재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상담이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
상담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경험을 다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안전은 오래된 관계의 문법을 조금씩 수정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상담실을 넘어 가족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폭력의 순환은 처벌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가 존재를 걸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경험할 때, 비로소 그 순환은 끊어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회복이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존재를 전제로 살아가는 삶으로 옮겨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존재를 전제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이상 매 순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증명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되고,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몸에 새겨 가는 삶이다.
그 경험은 한 사람을 바꾸고,
한 사람의 관계를 바꾸며,
결국 한 세대의 문법을 바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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