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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불안은 어떻게 나의 불안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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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7-04 20:44 조회64회 댓글0건

본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말한다.


"제가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개인의 성격처럼 들린다.


하지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불안은 개인에게서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갈등을 중재했던 사람.


집안의 분위기를 살피며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의 기분을 먼저 읽어야 했던 사람.


부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일보다 부모를 먼저 걱정했던 사람.


이들은 불안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 것이다.


머레이 보웬은 개인의 문제를 가족이라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그는 한 사람의 불안을 그 사람만의 성격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 전체를 흐르는 정서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유지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가족 안에서 불안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표정으로 전해지고,


침묵으로 전해지며,


한숨과 눈치, 역할과 책임을 통해 이어진다.


부모가 불안을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는 집안의 긴장을 감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긴장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


착한 아이가 되고,


중재자가 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부모의 감정을 돌보는 사람이 된다.


그 역할은 처음에는 가족을 위한 적응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역할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된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에도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먼저 떠올리고,


갈등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관계의 긴장을 줄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겉으로 보면 개인의 불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 불안은 오랫동안 가족 안에서 반복되어 온 정서의 흔적일 수도 있다.


보웬은 이러한 상태를 정서적 융합으로 설명했다.


가족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이 충분히 구분되지 않을 때,


가족의 불안은 자연스럽게 나의 불안이 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만날 때가 있다.


오랫동안 자신의 불안을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과 가족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다가, 문득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불안은 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불안이었던 것 같네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잔뜩 올라가 있던 어깨의 긴장이 눈에 띄게 풀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불안이 누구의 것인지를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다.


가족은 서로의 감정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내담자는 중요한 경험을 한다.


'내가 원래 불안한 사람이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족의 불안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왔을 수도 있구나.'


그 깨달음은 부모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과 가족의 감정을 처음으로 구분해 보는 경험이다.


보웬이 말한 분화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가족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해결책은 가족을 끊어 내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는 관계를 바꿀 수 있지만, 정서적인 거리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실제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아도 여전히 부모의 기대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가족의 걱정을 자신의 책임처럼 짊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분화란 가족과 단절하는 능력이 아니라,


가족과 연결된 상태에서도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상담은 종종 불안을 없애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때로는 불안을 줄이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불안은 정말 나만의 것일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개인의 문제처럼 보였던 불안은 가족이라는 더 넓은 지형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에게서 불안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그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새로운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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