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분화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본문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 사랑은 진짜였을까?"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질문은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
조증 상태에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
어린 시절 애착의 결핍으로 관계에 누구보다 목말랐던 사람.
처음 만난 사람에게 운명처럼 끌렸다고 말하는 사람.
우리는 쉽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한다.
'진짜 사랑이었다.'
혹은
'질병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상담은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하는 작업이 아니다.
사랑을 분화하는 작업이다.
한 사람은 조증 상태에서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망설임 없이 다가갔고,
자신의 감정을 확신했다.
다른 사람은 어린 시절 중요한 애착 대상을 일찍 잃고,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는 상대의 적극적인 표현이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확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조증이 만든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상담은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그 사랑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는가.
실제 호감도 있었을 것이다.
외로움도 있었을 것이다.
애착의 갈증도 있었을 것이다.
기분 상태가 감정을 증폭시킨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향한 진심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마음이 겹쳐 만들어진 경험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담을 하며 점점 더 확신하게 되는 것은,
사람은 사랑을 배우기보다 사랑을 분화해 간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따뜻함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안아 주는 것.
손을 잡아 주는 것.
칭찬해 주는 것.
곁에 있어 주는 것.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하나의 경험으로 존재한다.
성장하면서 비로소 그것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이것은 부모의 사랑.
이것은 우정.
이것은 존중.
이것은 친밀감.
이것은 성적 끌림.
이것은 연인의 사랑.
이 분화가 이루어질수록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 경험을 마음속에 내재화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거나,
관계의 경계가 혼란스러웠던 사람에게는 이 분화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친밀감을 사랑으로 느끼기도 하고,
보호를 소유로 오해하기도 하며,
애착과 성애의 경계가 희미한 채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은 모호함을 제거하는 작업이 아니다.
모호함 속에 섞여 있는 마음들을 하나씩 구분해 가는 작업이다.
"이것은 외로움이었구나."
"이것은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이었구나."
"이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구나."
"이것은 안전해지고 싶은 마음이었구나."
그리고
"이것은 분명 사랑이었구나."
흥미로운 것은 사랑을 분화한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다른 감정들이 하나씩 제 이름을 찾고 나면,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그 사람의 진심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두 사람은 결국 오랜 시간을 함께한 뒤 서로를 존중하며 좋은 이별을 선택했다.
관계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기분 상태도 있었고,
각자의 애착 역사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아끼고,
배우고,
성장했다면,
그 관계는 두 사람의 삶에서 분명 의미가 있었다.
모든 사랑이 평생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을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성장시키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상담은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섞여 있던 마음들을 하나씩 분화하여,
그 안에 담겨 있던 외로움과 두려움,
애착과 욕구,
기대와 환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고도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