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끝났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본문
우리는 사랑을 결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했는가.
평생 함께했는가.
헤어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말 사랑의 가치는 그 결과만으로 결정될까.
오랫동안 상담을 하며 한 가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변한다는 사실이다.
예전부터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사람이 달라지는 계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깊은 믿음을 만나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상담을 만나거나.
물론 종교를 가진다고 모두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한다고 모두가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다.
상담을 받는다고 누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삶을 바꾸는 경험의 중심에는 대개 관계가 있다.
진심으로 존중받는 경험.
이해받는 경험.
실수해도 버려지지 않는 경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
그 경험은 사람 안에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남긴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 텐데 이번에는 참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제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깨닫는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특히 사랑은 그런 변화를 가장 깊이 이끌어 내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처음으로 조건 없이 존중받는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어떤 사람은 처음으로 다투고도 버려지지 않는 관계를 경험한다.
그 경험은 이전의 자신을 조금씩 다시 써 내려간다.
원가족 안에서 만들어졌던 관계의 언어가 새로운 관계 안에서 수정되고,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오래된 방식이 조금씩 힘을 잃는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중요한 관계 경험이 마음속에 내재화된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경험,
존중받았던 경험,
안전하게 머물 수 있었던 경험은 단순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그 경험은 마음속에 하나의 대상이 되어 자리 잡는다.
그래서 좋은 관계는 관계가 끝나는 순간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했던 사람이 떠나더라도,
그 사람을 통해 형성된 내면의 경험은 남는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자신을 비난하던 목소리 대신,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 주던 사람의 목소리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게 된다.
어떤 사람은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던 삶에서 벗어나,
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관계는 끝났지만,
그 관계를 통해 형성된 내면의 대상은 계속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끝났어도 실패하지 않는다.
함께한 시간이 영원하지 않았더라도,
그 관계를 통해 이전과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 사랑은 이미 한 사람의 삶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성공을 지속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관계의 길이와 관계의 가치는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랑은 평생 함께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이별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상대는 떠났지만,
그 관계를 통해 경험한 존중과 신뢰,
안전감과 따뜻함은 내면에 남아 이후의 삶을 지탱한다.
그래서 사랑의 성공은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가 아니라,
그 사랑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어쩌면 가장 좋은 사랑은 상대를 붙잡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이전보다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사랑은 끝났어도 실패한 사랑이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랑일 수 있다.
어떤 사랑은 사람 곁에 남지 않는다.
대신 사람 안에 남는다.
그리고 그 내면의 대상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삶을 지탱한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끝났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