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모두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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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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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분화한다.
처음에는 모든 따뜻함이 사랑이다.
안아 주는 것.
웃어 주는 것.
함께 있어 주는 것.
칭찬하는 것.
손을 잡아 주는 것.
아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경험이다.
성장하면서 비로소 그 경험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애착.
돌봄.
우정.
존중.
친밀감.
성애.
그리고 사랑.
이 분화가 이루어질수록 사람은 관계를 덜 오해하게 된다.
반대로 분화가 충분하지 않으면 친밀감을 사랑으로,
사랑을 소유로, 소유를 안전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최근 한 실제 사건을 다룬 영상을 보며 이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친부와 살다가 다시 친모와 함께 살게 된 한 아이는 결국 의붓아버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사건의 전개는 매우 비극적이었고, 여러 사람의 왜곡된 판단과 선택이 겹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공개된 사실만으로 그 아이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건은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남겼다.
아이가 표현하는 친밀감의 언어를 어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애착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아이는 따뜻함을 갈망하며 어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 행동은 안전을 찾는 몸짓일 수도 있고, 보호받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그 친밀감이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면,
아이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 속으로 끌려 들어갈 위험에 놓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을 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이것은 부모의 사랑이고,
이것은 선생님의 관심이며,
이것은 친구와의 친밀감이고,
이것은 존중이며,
이것은 연인의 사랑이라는 것을 삶 속에서 천천히 배워 가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그 분화를 배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은 언제나 어른의 몫이다.
상담을 하며 깨닫는 것은 아이들은 사랑을 몰라서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아직 사랑의 언어들이 하나의 감각으로 섞여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모두 사랑이었다.
그리고 성장이란, 어쩌면 그 하나의 사랑이 여러 이름을 갖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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