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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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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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 개발자의 인터뷰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AI가 하나의 문장을 이해하고 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화면이었다.
단어 하나를 따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이상할 정도로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불안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우울을 말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상담을 하다 보면 더 이상 증상 하나만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의 원가족은 어떠했는지, 어떤 관계를 반복해 왔는지,
타고난 기질은 어떠한지, 현재의 상호작용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지금의 증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가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머릿속의 하나의 공간에 올려놓는다.
호소 문제와 증상, 관계와 성격, 기질과 성장 과정이 서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형태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직선처럼 흘러간다.
어떤 사람은 U자 곡선을 그린다.
어떤 사람은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맴도는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내담자 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형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문득 밤하늘의 별자리가 떠오른다.
별 하나는 그저 하나의 점일 뿐이다.
그러나 수많은 별들을 오랫동안 바라본 사람은 그 점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연결을 발견한다.
사자자리, 오리온자리, 북두칠성은 하늘에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별들 사이에서 인간이 발견한 하나의 구조이다.
상담도 비슷하다.
내담자 한 사람은 하나의 별이다.
수백 명, 수천 명의 내담자를 만나면서 나는 점점 그 별들이 만드는 별자리를 보게 된다.
비슷한 삶의 흐름, 반복되는 관계, 공통된 상처, 닮은 회복의 과정이 하나의 구조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나는 사람을 증상이 아니라 패턴으로 이해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기하학과도 닮아 있다.
기하학은 계산보다 관계를 본다.
점과 점 사이의 거리, 위치, 방향, 곡선, 형태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상담 역시 사람을 하나의 진단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만들어 내는 형태를 읽는 작업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점 하나가 아니라, 점들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가이다.
AI를 만든 연구자들의 접근도 이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언어를 연구했다.
단어 하나의 의미보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문장보다 문맥을, 개별 정보보다 구조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인 조망수용의 원리 역시 부분적으로 구현하려 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차 자신과 타인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상상하며 관계를 만들어 간다.
AI 역시 상대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어떤 맥락에서 말하는지를 추론하며 답을 생성한다.
물론 둘은 같지 않다.
AI는 관계를 계산할 수 있지만 관계를 살아내지는 못한다.
상실을 겪어 본 적도 없고, 사랑 때문에 흔들려 본 적도 없으며, 누군가의 눈빛 하나에 위로받은 경험도 없다.
그러나 인간이 남긴 수많은 언어 속에서 그러한 경험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학습할 수 있다.
어쩌면 AI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특징을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연결하는 존재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성장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의미를 재구성하는 존재이다.
상담자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함께 탐색한다.
오늘 나는 AI의 성능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의 질문에 더 놀랐다.
'인간은 어떻게 의미를 연결하는가.'
'사람은 왜 어떤 관계에서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가.'
'맥락은 어떻게 하나의 이해를 만들어 내는가.'
그 질문을 끝까지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AI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상담도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을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으로도 이해하지 않는다.
점들을 이어 하나의 별자리를 발견하듯, 삶이 그리는 형태를 읽는다.
어쩌면 상담은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기하학을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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