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마지막 과제는 나를 되찾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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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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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사랑의 사전」이라는 글에서 나는 부모에게서 사랑의 언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인정의 말로 사랑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함께하는 시간에서,
어떤 사람은 선물에서,
어떤 사람은 봉사에서,
어떤 사람은 신체접촉에서 사랑을 확인한다.
우리는 그렇게 부모에게서 사랑의 사전을 물려받고, 그 사전을 들고 배우자를 만난다.
그런데 사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맞춰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생활 습관을 맞추고,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줄인다.
이러한 적응은 건강한 친밀감을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를 위해 '나'를 조금씩 접는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삶을 원했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웠는지보다,
가족이 원하는 것이 먼저가 된다.
특히 이전 세대의 많은 여성들은 더욱 그러했다.
딸로 살아가고,
아내로 살아가고,
며느리로 살아가고,
엄마로 살아간다.
삶은 역할로 가득 차고,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좋은 사람의 기준이 되었다.
최근 상담실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결혼 후 남편이 출근할 때 양말까지 신겨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던 것은 양말을 신겨 주었다는 행동 자체가 아니었다.
그 행동이 그녀에게는 '좋은 아내라면 해야 하는 일'로 너무도 자연스러웠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헌신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상담을 이어 가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분은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한 것이 언제였을까?'
상담실에서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여성들을 많이 만났다.
함께 살 때는 미운 마음도 있었고,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사별 후 그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의외로 분노가 아니었다.
"더 잘해 줄 걸."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말해 줄 걸."
"그때는 왜 그 말을 했을까."
나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를 먼저 보내신 뒤 통곡하며 가장 많이 하셨던 말씀은 '못해 준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앞에서 충분히 살아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 때문에 울기도 한다.
하지만 애도 상담을 오래 하면서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배우자를 잃은 뒤 힘든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우리'로 살아왔기에, 이제는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친구와의 관계를 끊고,
집 안에서만 지내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상담실을 찾는 분들에게서 반복해서 들었던 말이 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말은 시간이 남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평생 역할을 살아왔기에, 역할이 사라진 뒤의 자신을 만나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애도는 떠난 사람을 잊는 과정이 아니다.
그 사람과의 시간을 부정하는 과정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마음에 품은 채,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
추억은 소중하다.
그러나 추억이 현재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떠난 사람은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물 수 있지만, 살아 있는 우리의 삶까지 대신 살아서는 안 된다.
상담은 종종 내담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제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처음에는 대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평생 역할의 이름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고,
잊고 지냈던 취미를 다시 시작하고,
친구를 만나고,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 삶은 조금씩 현재를 회복한다.
그때 비로소 애도는 끝나기 시작한다.
애도의 마지막은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역할 뒤에 머물러 있던 자기 자신을 다시 삶의 앞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우리'가 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애도를 통해 다시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삶은 이 두 가지를 반복해서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우리를 연결하고,
애도는 우리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데려온다.
그래서 애도의 마지막 과제는 떠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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