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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정동이 과거의 정동과 겹쳐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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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26 12:38 조회78회 댓글0건

본문


사람들은 흔히 감정을 생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게 생각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이해하면 덜 힘들 것이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니 잊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데 몸은 여전히 긴장하고,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도 같은 상황을 만나면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난다. 

어떤 사람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데도 갑자기 울컥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강한 분노나 불안을 경험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람이 생각보다 먼저 정동(affect) 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동은 흔히 감정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조금 다른 층위의 경험이다. 

감정이 '슬프다', '화가 난다', '억울하다'처럼 언어로 이름 붙여진 경험이라면, 정동은 그보다 앞선 자리에서 몸과 마음에 먼저 일어나는 신경-정서적 반응이다.


나는 정동을 현재와 과거의 생존 경험이 동시에 작동하는 신경-정서적 반응 상태라고 이해한다.


여기서 생존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생존은 버려지지 않는 것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지나간 사건으로만 남지 않는다. 몸과 신경계 안에 정동의 흔적으로 저장되고, 현재의 관계에서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다시 활성화된다.


그래서 사람은 현재를 현재로만 경험하지 않는다.


상사의 말 한마디가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깨우고,


배우자의 무심한 태도가 오래전 외로움을 불러오며,


누군가의 편견 어린 시선이 과거 충분히 설명되기도 전에 평가받았던 경험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현재의 정동이 과거의 정동과 겹쳐지는 순간이다.


이때 사람은 지금의 사건 하나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간에 걸쳐 축적된 정동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래서 현재의 반응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순간 사람들은 대개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합리적으로 생각해야지.'


'왜 아직도 이런 감정이 남아 있지?'


하지만 생각은 정동보다 늦게 도착한다.


정동은 생존을 위해 먼저 반응하고, 인지는 그 반응을 이해하려고 뒤따른다.


우리는 흔히 충동조절을 전두엽의 기능이라고 배운다. 물론 전두엽은 행동을 선택하고 결과를 예측하며 충동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 상담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아무리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정동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왜 이러는지 아는데도 멈출 수가 없어요.'


라는 말은 결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생존을 담당하는 정동이 먼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동이 충분히 안정되면 사람은 비로소 생각할 여유를 되찾는다. 여러 가능성을 살펴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충동조절은 의지가 감정을 이기는 과정이라기보다 정동이 안정되면서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렇다면 정동은 어떻게 안정될까.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없애려고 하거나, 논리로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동은 논리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경험되고 담길 때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한다.


"아, 내가 불안했구나."


"그때 정말 억울했구나."


"그 상황이 내게는 생존의 위협처럼 느껴졌구나."


이러한 문장은 단순한 자기위로나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다.


언어가 정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동을 의식 안으로 초대하는 과정이다.


막연하게 몸을 흔들던 경험은 이렇게 조금씩 이름을 갖게 되고, 이름을 갖는 순간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과 함께 머무는 것이다.


불안을 없애려 하기보다 "불안했구나."라고 머물러 보고,


억울함을 설명하기보다 "정말 억울했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정동이 충분히 담기고 안정되면, 그제야 현재와 과거를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상담은 과거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다.


현재의 정동 속에 살아 있는 과거를 함께 만나는 과정이며, 혼자 견디기 어려웠던 정동을 안전한 관계 안에서 다시 경험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럴 때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생존 방식만을 반복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선택이 조금씩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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