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유
칼럼 포유
칼럼 포유

분석할 수 있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20 19:54 조회74회 댓글0건

본문


최근 영화 *Wit*을 보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문학 교수다. 그는 누구보다 언어를 잘 다루고, 시를 깊이 분석하며, 의미를 해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학생들에게는 냉철하고 엄격하며, 작품 속 문장 하나하나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그런데 암에 걸린 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이전과 조금 다르다.


평생 언어를 분석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두려움과 외로움, 고통은 분석만으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속 한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은 젊은 의사에게 묻는다.


"환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과목은 없나요?"


의사는 그런 과목이 있긴 했지만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고 답한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그날 마지막으로 만난 내담자가 떠올랐다.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낸 내담자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질문을 품고 살아왔다.


"엄마가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요?"


처음에는 죄책감에 관한 질문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다른 모습이 보였다.


그는 어머니를 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의사가 아니었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가 정말 몰랐던 것은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묻는 방법이었다.


"엄마, 많이 무섭지."


"엄마, 많이 힘들지."


"엄마를 잃을까봐 나도 무서워."


그는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역시 그런 감정을 말로 나누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계를 꾸리고 하루를 버티는 것이 우선이었던 삶 속에서 감정은 종종 뒤로 밀려난다.


힘들어도 참고,


슬퍼도 견디고,


무서워도 버틴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상담 중 나는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말을 건네 보았고, 당시 내담자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 보았다.


그러자 그는 한참 동안 울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 뒤에도 자신이 왜 우는지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아팠을지.


그러나 몸은 이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만나고 있는 듯했다.


영화 속 주인공도 비슷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평생 놓치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사람은 의미를 해석하는 존재이기 전에 관계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석이나 정답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존재일 때가 많다.


상담실에서도 종종 비슷한 장면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하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아니,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언어를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담은 때로 문제를 분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감정을 번역하는 작업이 된다.


머리가 이해하고 있던 이야기를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옮기는 일.


어쩌면 인간의 성장은 더 많이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되는 순간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은 것을 분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삶에는 분석할 수는 있어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때로 눈물은, 머리가 오래전에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제야 만난 진실 앞에서 흘러나온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