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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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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06 07:10 조회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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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국 드라마 [어린 목격자]를 보았다.


한 여성은 살해되었고, 어린 아들은 그 장면을 목격한다. 


사건은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고 경찰은 범인을 찾기 위해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초기 수사는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진범은 오랫동안 사회 속에 남아 추가 범죄를 저질렀다.


드라마를 보면서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범죄 자체보다도 

사람의 삶을 만들어 가는 힘에 대한 질문이었다.


범인으로 밝혀진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부터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정서적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학대와 트라우마를 경험한 흔적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지만 아들의 내면까지 충분히 만나 주지는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드라마를 본 다음 날 한 내담자를 만났다.


그는 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했고, 

학급 임원을 맡을 만큼 리더십도 있었다. 

친구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함보다 강점이 더 많은 삶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야기를 듣는 내내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느낌이 들었다.


말의 내용은 괜찮은데 말의 온도는 달랐다.


마치 "그래도 나는 별것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조금 더 성장과정을 살펴보면서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고 차별과 상처를 경험하며 성장했다.


그 결핍은 성공을 향한 강한 추진력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성공이 어린 시절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는 것은 아니다.


치유되지 않은 결핍은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아버지의 시선은 늘 성공과 성취를 향해 있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가.


어느 위치에 올라갔는가.


그 기준은 아들을 향한 평가의 기준이 되었고, 아들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기보다 

아버지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 듯했다.


그래서 실제 능력과 성취가 어떠한가보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나는 기대에 충분히 미치지 못했다."라는 감각이 더 크게 자리 잡게 된 듯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잘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자신의 강점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조차 부모의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존재로서의 자신보다 성과로서의 자신을 먼저 평가한다.


그래서 언제나 부족하다.


언제나 더 잘해야 한다.


언제나 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문득 드라마 속 인물이 떠올랐다.


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아버지를 두었지만 정서적으로는 깊은 결핍 속에서 성장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엄마를 잃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지만 끝까지 곁을 지켜 준 아버지가 있었다.


물론 사람의 인생은 부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타고난 기질도 있고, 환경도 있고, 우연과 선택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배우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 역시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 기억 속에서 평생 자신을 부족한 존재로 여기며 살아간다.


반면 어떤 사람은 상처를 입었어도 자신을 믿어 준 한 사람의 존재를 통해 다시 일어선다.


우리는 흔히 성공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좋은 대학, 높은 지위, 많은 재산, 사회적 명성.


물론 그것들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성취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경험일 때가 많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내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부모의 눈인가.


사회의 눈인가.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하는 내면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어린 시절 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눈빛일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는 부모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나 성장한다는 것은 그 시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신의 눈을 회복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눈빛 속에서 자신을 배운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누구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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