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거울 앞에서 받은 통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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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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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생일 선물도 할 겸, 내일 있을 중요한 미팅에 입을 옷도 준비할 겸 오랜만에 백화점에 갔다.
원래는 여름옷 몇 벌 정도를 생각했다. 머릿속 예산도 있었다. 20만 원 내외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옷을 입어보고, 거울을 보고, 이것저것 비교하다 보니 예상보다 큰 금액을 지출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묘하게 헛헛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 때문인 줄 알았다.
"여름옷인데 너무 과하게 쓴 건 아닐까?"
"이 돈이면 상담을 몇 시간 해야 하는 거지?"
계산기를 두드리듯 머릿속에서 노동과 비용이 연결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헛헛함의 정체는 조금 달랐다.
돈보다 더 큰 무언가가 마음을 건드리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백화점에 가면 의류 매장 전 층을 둘러보곤 했다.
혹시 마음에 드는 옷이 있을까.
저 브랜드도 한 번 들어가 보고, 다른 층도 구경해 보고.
선택지는 많았고, 대부분의 옷은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달라졌다.
이제는 20~30대가 주로 찾는 층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가도 내 옷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곧장 내가 입었을 때 자연스러운 몇 개의 브랜드가 있는 층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유독 잘 맞는 몇 개의 상표만 찾게 된다.
예전에는 다양한 옷이 나를 받아주었다면,
지금은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이 서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득 삶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여름옷을 입어보면서 그 감정은 더욱 선명해졌다.
겨울옷은 원래 비싸다.
좋은 소재와 두께, 코트와 니트의 가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비용을 예상하고 간다.
하지만 여름옷은 달랐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여름옷 정도는 부담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오래된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거울 속의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여름옷도 예전의 기준으로는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
싼 옷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소재와 재단, 색감이 얼굴과 몸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이 조금 짠했다.
하지만 진짜 통지서는 그 다음에 도착했다.
백화점 거울은 집 거울보다 훨씬 밝고 선명하다.
여름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팔목과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글을 쓸 때도, 요리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대부분 오른손을 사용한다.
왼손은 운전대를 잡거나 물건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런데 거울 속 두 손은 같은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더 많이 사용한 오른손에 시간이 먼저 내려앉아 있었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양손이 다르게 늙는다는 사실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늙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흔적이 다르게 남는다는 사실을.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슬픔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고,
충격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했다.
그저 짠했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글을 썼을까.
얼마나 많은 밥을 지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이를 돌보고, 삶을 붙들어 왔을까.
오른손은 단순히 나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백화점에서 나는 옷을 산 것이 아니었다.
거울 앞에서 삶이 조용히 건네준 한 장의 통지서를 받은 것이었다.
"당신은 또 한 계절을 건너왔습니다."
젊음이 끝났다는 통지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잃었다는 통지서도 아니었다.
지금의 얼굴과 지금의 몸, 그리고 지금의 시간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왔다는 안내문에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큰 사건을 통해 나이를 실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의 계절은 그렇게 거창하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 날 거울 속 손등에서,
예전보다 비싸진 여름옷에서,
자연스럽게 향하게 되는 매장의 층수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날의 헛헛함은 소비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다.
삶이 또 한 번 움직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통지서를 가방 속 영수증처럼 조용히 접어 넣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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