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포유
칼럼 포유
칼럼 포유

알지 못함의 자세를 견디는 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25 13:49 조회175회 댓글0건

본문

[운명의 알리바이]라는 영화는 두 어린 소녀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한 변호사와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을 다룬다.


영화는 단순히 범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라기 보다,
오히려 사람의 편견과 확신이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고, 

한 인간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사건 속 변호사는 어딘가 수상해 보인다.

설명되지 않는 행동들이 있고, 감추는 것도 있다.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의 행동을 점점 의심하기 시작한다.


특히 남편이 조카 여자아이와 오래 대화하는 모습,
레인코트와 관련된 남편의 진술을 번복하고,
어딘가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들은
그녀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순간부터였다.


한 번 “저 사람이 범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자,
이후의 모든 정보는 그 방향으로 해석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생각을 강화하는 정보는 더 쉽게 받아들이고,
반대로 그것과 맞지 않는 정보는 축소하거나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편향된 사고가 완전히 허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단서들은 존재한다.
다만 그 단서들을 연결하는 방식이 특정 감정과 신념에 의해 기울어지는 것이다.


영화 속 아내 역시 단순히 비이성적인 인물이 아니다.
불안, 질투, 거리감,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 섞이며
그녀는 점점 자신의 해석을 진실로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진범이 밝혀지고 남편이 무죄로 드러난 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장면은 단순한 죄책감 이상의 붕괴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녀가 무너진 것은
단순히 사건 판단이 틀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
자신의 해석 능력,
자신의 확신 전체가 무너져내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것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보고 싶은 방향”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존재인가 하는 점이었다.


불안한 사람은 작은 거리감도 버림으로 읽고,
상처받은 사람은 사소한 침묵도 공격처럼 느끼며,
외로운 사람은 작은 친절 하나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현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의 렌즈가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조건 빠르게 결론 내리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모를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담에서 필요한 것 역시 “알지 못함의 자세(not-knowing stance)”이다.


지금 보이는 장면만으로 한 사람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 것.
내 감정과 경험이 해석을 끌고 갈 가능성을 함께 의식하는 것.
그리고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맥락이 존재할 수 있음을 열어두는 태도이다.


사람은 종종 타인을 단편적으로 이해한다.
한 장면, 한 행동, 한 실수만으로 쉽게 정의해버린다.


하지만 알지 못함의 자세를 견디는 힘으로 한 존재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숨기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수치심을 가진 사람일 수 있고,
차가워 보이는 사람 안에 깊은 불안이 있을 수도 있으며,
과도하게 의심하는 사람 안에는 버려질 것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쩌면 성숙이란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 이전에,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힘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