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없는 해석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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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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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거의 평범한 가족]을 보며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살인 사건이나 가족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강하게 붙들린 장면은 그 이전에 있었다.
성폭행 피해를 경험한 딸에게 엄마는 묻는다.
"너는 싫다고 분명히 말했니?"
변호사인 엄마의 질문은 법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법적 논리가 아니었다.
공포와 무력감 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한 아이의 몸이었다.
힘의 차이가 큰 상황에서 사람은 싸우거나 도망치지 못할 때가 있다.
몸이 얼어붙고, 생각이 멈추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의 질문은 그 경험을 묻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충분히 거부했는지를 물었다.
그 순간 아이는 피해 경험을 한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거부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종종 사실보다 해석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해석인 경우가 많다.
"왜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니?"
"왜 그렇게 행동했니?"
"왜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니?"
이 질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당사자의 경험을 지워 버린다.
그 사람이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몇 년 전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 기관에서 수련 과정 중 발생한 문제로 인해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상담을 받고, 사과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당시 나는 이미 20년이 넘게 교육과 상담 현장에서 일해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살아온 시간과 맥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몇 가지 문장뿐이었다.
"서면동의를 받지 않았다."
"슈퍼비전이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사용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수련생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해석되었다고 느꼈다.
지금도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처분 자체가 아니다.
한 번 굳어진 해석이 사람을 어떤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가 하는 점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러 관련 기관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규정을 적용했고,
누군가는 절차를 검토했고,
누군가는 윤리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작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맥락은 사라졌다.
상담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어떤 내담자는 결국 무혐의를 받았지만 조직을 떠났다.
또 어떤 사람은 오해가 풀렸음에도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법적 판정과 심리적 회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유죄 판결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이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이야기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고 느낄 때 더 깊이 무너질 수 있다.
상담사로서 나는 늘 사람의 맥락을 보려고 노력한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한 사람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의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맥락보다 해석을 선호한다.
복잡한 이야기는 지루하고,
맥락은 시간이 걸리며,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번거롭다.
반면 해석은 간단하다.
한 줄의 평가,
한 번의 규정,
하나의 낙인.
그러나 그 단순한 해석이 누군가의 삶에는 오랫동안 남는다.
판단하는 사람들은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해석당한 사람은 그 결과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의 맥락을 놓친 채 해석만 하고 있는가.
맥락 없는 해석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그것은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몇 개의 문장으로 축소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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