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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하던 것을 언어로 옮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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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02 17:50 조회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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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담실에서 신체화를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자주 만난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다고 말한다. 


병원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몸은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오늘 만난 내담자 역시 두통과 어지럼증을 주로 이야기했다.


상담을 진행하며 가족의 소통 방식을 들여다보니 흥미로운 점이 보였다. 


가족들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화 속에는 감정 단어가 거의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설명하고, 해결책을 찾고, 침묵하거나 회피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지만, 

무엇이 슬픈지,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이 서운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가족들을 종종 만난다.


생각은 많지만 느낌은 말하지 못한다.

설명은 하지만 표현하지 못한다.

이해는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경우 몸이 대신 말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두통으로,

어떤 사람은 어지럼증으로,

어떤 사람은 배앓이나 소화불량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특히 상담 장면에서 보면 감정보다 생각을 먼저 사용하는 사람들, 

표현보다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중에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물론 모든 신체 증상이 심리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담실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상담 중 충분히 울고 난 후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하는 사람.

배앓이가 사라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답답했던 가슴이 편안해졌다고 말하는 사람.

신기하게도 상담 직후에는 증상이 완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상담 간격이 길어지면

다시 두통이나 복통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신체화 증상은 단순히 제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아직 언어를 찾지 못한 마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몸이 하던 말을 잠시 마음이 대신 말해 주었을 때 증상은 완화된다.


그러나 자신의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은 다시 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지나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동화책을 읽으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들과 함께 살아갔고, 

스케치북을 펼치면 그림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 상상들은 현실과 연결되기보다 내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성장 과정에서는 살아남고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치를 보고, 순응하고,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버텨야 했다.


뇌의 구조로 비유하자면 생존을 담당하는 뇌간의 언어가 중심이었던 시기였다.


그 다음에는 정서의 시기가 찾아왔다.


감정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답답하고 슬프고 화가 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정서는 있었지만 아직 언어는 없었다.


마치 편도체에 머물러 있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박사과정과 상담 공부, 그리고 개인분석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논문을 쓰고, 개념을 이해하고, 이론을 구조화하면서 나는 생각하는 힘을 길렀다.


감정을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의 행동과 관계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두엽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시기였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오페라를 듣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의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단순히 관심사가 바뀐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채널의 생성이라기보다 분리되어 있던 채널들의 연결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의 상상력과 감수성.


공부를 통해 얻은 분석력과 이해력.


그리고 내면 작업을 통해 발견한 정서의 언어.


그것들이 서로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신체화를 보면 단순히 증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몸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직 말이 되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고 있다.


가슴의 답답함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목의 막힘은 어떤 말을 삼키고 있는가.


두통은 무엇을 견디고 있는가.


배앓이는 무엇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가.


상담은 어쩌면 그 몸의 말을 함께 듣고, 

정서를 감정으로, 감정을 언어로 옮겨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몸은 먼저 느낀다.


감정은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생각은 그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언어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상담은 분리되어 있던 몸과 감정, 생각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몸이 대신 말하던 것을 감정이 알아차리고,


감정이 생각을 만나고,


마침내 자신의 언어가 된다.


그래서 상담은 몸이 말하던 것을 언어로 옮기는 일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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