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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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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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공용 공간에 놓인 재활용 수거함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수거함은 원래 상담센터에서 사용하는 분리수거를 위해 마련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함이 다른 물건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택배 박스와 포장 케이스, 종이 가방이 접히지도 않은 채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에 음식물이 묻은 쓰레기까지 섞여 들어오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결국 큰 파리까지 생겼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자리를 떠났지만, 냄새를 맡고 파리를 잡고 뒤처리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경계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경계를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경계란 단순히 소유를 구분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행동이 끝나는 지점과 그 행동의 영향이 타인에게 미치는 지점을 함께 인식하는 능력.
내가 사용한 공간을 누가 관리하는지,
내가 남긴 흔적을 누가 치우게 되는지,
내 편의가 누군가의 불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 있는 힘.
어쩌면 그것이 경계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경계가 선명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만 보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본다.
반대로 경계가 흐려진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끝난 이후를 잘 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물건을 버리는 행위만 존재할 뿐, 그 뒤에 따라오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경계의 문제는 공동생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만난다.
최근 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숨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어머니는 자녀가 좋아하는 사람을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가하고 비난했다.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보다 통제하려 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를 찾아가 망신을 주겠다고까지 말했다.
그 어머니에게 자식은 독립된 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녀의 선택은 곧 자신의 선택이었고,
자녀의 연애는 자신의 연애였으며,
자녀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곧 너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는 그 반대의 저점에서 시작된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다."
나는 오래전부터 Kahlil Gibran의 시에 깊이 공감해 왔다.
그는 《The Prophet》에서 자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의 자녀는 너희의 자녀가 아니다.
그들은 생명 그 자체가 자신을 그리워하여 낳은 아들과 딸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그들은 너희를 통하여 왔으나 너희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너희와 함께 있으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부모는 생명의 통로가 될 수는 있지만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사랑할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 없고,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조언할 수는 있지만 선택할 수는 없다.
건강한 경계란 상대를 나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하고,
때로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길을 걷더라도 그 삶을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삶의 많은 갈등은 이 단순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 시작된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연장선으로 여길 때,
배우자가 상대를 자신의 소유처럼 여길 때,
누군가 타인의 공간을 자신의 공간처럼 사용할 때,
그때 우리는 나와 너의 경계를 잃어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경계가 흐려지는 방식이 꼭 한 가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삶을 침범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타인의 책임까지 자신의 몫처럼 떠안는다.
겉으로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두 경우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가.
최근 나는 익숙한 감정 하나를 발견했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은 내가 지고 있는 느낌.
누군가의 행동이 만든 결과를 내가 수습하고,
누군가의 관리 소홀을 내가 보완하고,
누군가의 무관심이 만든 문제를 내가 해결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건강한 경계란 단순히 남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책임은 내가 지고,
네 책임은 네가 지도록 두는 것.
내 공간을 존중하듯 타인의 공간을 존중하고,
타인의 자유를 인정하듯 나의 자유도 인정하는 것.
결국 건강한 관계란 서로를 붙잡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일같이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가.
그리고 건강한 관계는 그 질문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나를 나로 두고,
너를 너로 둘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존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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