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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동이 먹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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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6-05 15:34 조회1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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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조사를 앞두고 서류를 정리해야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야 하고, 이번 기회에 자료도 정리하고 분류해 두면 앞으로 훨씬 편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이상하게 몸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책상을 정리하기보다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싶었고, 서류 파일을 열어보기보다 상담 사례를 떠올리거나 글을 쓰고 싶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귀찮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귀찮음 아래에는 불편감이 있었고, 불편감 아래에는 불안이 있었다.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으면 어떡하지?

혹시 예전에 했던 실수가 다시 발견되면 어떡하지?


그 순간 문득 상담실에서 자주 던지던 질문이 떠올랐다.


상담에서 우리는 종종 "행동을 막고 있는 정서"에 주목한다.


우리는 행동이 잘 일어나지 않을 때 종종 묻는다.


"무엇이 그 행동을 막고 있는가?"


운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고,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죄책감이 있을 수 있으며,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실패에 대한 불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그 행동은 무엇을 먹고 있는가?"


처음에는 비슷한 질문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행동을 막고 있는 정서'는 행동이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찾는 질문이다.


반면 '행동이 먹고 있는 정서'는 그 행동이 어떤 정서를 품고 유지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서류 정리를 미루는 행동은 단순히 게으름 때문이 아닐 수 있다.


그 행동은 불안을 먹고 있을 수 있다.


실수가 발견될까 봐.

평가받게 될까 봐.

과거의 문제가 다시 돌아올까 봐.


행동은 그 불안을 먹고 자라난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일이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이어졌고, 

선의를 가지고 한 선택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믿음이 남았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맥락은 사라지고 결과만 평가받을 수 있다."


이 경험들은 그 이후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심스러워졌고,

확인하는 과정이 늘어났으며,

때로는 시작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행동은 단순히 어떤 정서에 의해 막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서를 먹고 유지되기도 한다는 것을.


회피는 불안을 먹고,

과도한 책임감은 죄책감을 먹고,

완벽주의는 수치심을 먹고,

끊임없는 바쁨은 공허함을 먹고 살아갈 수 있다.


행동만 없애려고 하면 실패하기 쉽다.


그 행동은 이미 어떤 정서를 처리하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피는 불안을 잠시 피하게 해 주고,

완벽주의는 부족함을 감추게 해 주며,

과도한 책임감은 죄책감을 견디게 해 준다.


문제는 그 기능이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를 묶어 두기도 한다는 점이다.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행동을 교정하는 것보다 그 행동이 먹고 있는 정서를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반복하고 있는 어떤 행동이 있다면 한 번쯤 물어볼 수 있다.


"무엇이 이 행동을 막고 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행동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때로는 그 두 번째 질문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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