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 방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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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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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예전에는 그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 내 말을 오해하면 설명했고,
다시 설명했고, 그래도 이해되지 않으면 답답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며칠 전 수박을 한 통 사 왔다.
더운 여름, 시원한 수박은 반갑지만 늘 남는 것이 있다. 두꺼운 수박껍질이다.
우연히 수박껍질을 활용한 요리 영상을 보고 따라 해 보았다.
맛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수박껍질 무침을 만들어 두었는데,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수박 반 통의 속살을 먹기 좋게 손질해 놓고는 커다란 껍질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순간 답답함이 올라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의 의도는 이해가 갔다.
전날 내가 수박껍질을 삶는 모습을 보았으니 수박껍질이 필요한 줄 알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름대로는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했던 행동의 의미는 "수박껍질을 좋아한다"가 아니었다.
"버려지는 것을 줄여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 행동의 맥락을 보았고, 남편은 행동 자체를 본 것이다.
문득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늘 생선 대가리를 먹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생선 대가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어느 날 사랑의 표현으로 생선 대가리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좋아해서 먹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살코기를 양보하고 남은 부분을 먹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행동을 보았고, 엄마는 그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누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우리 삶 곳곳에서 반복된다.
차 번호를 정할 때도 그랬다.
나는 특정 숫자 하나보다 전체적인 느낌과 조합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는 그중 한 숫자에 집중했다.
주차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현재 상태를 보고,
어떤 사람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같은 상황인데도 바라보는 초점이 다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현실을 보고 있지만,
같은 층위의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정보와 행동을 본다.
어떤 사람은 맥락과 구조를 본다.
어떤 사람은 개인의 선택을 본다.
어떤 사람은 관계와 의미를 본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상대방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느 날 한 내담자가 반복되는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담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행동이 특정한 상황에서 반복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정받고 싶은 마음,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 같은 경험들이 그 행동과 연결되어 있었다.
상담이 끝난 뒤 그는 문자를 보내왔다.
"상대방에게 제 마음을 설명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보냈다.
정답 같은 문장보다 자신의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별다른 답은 오지 않았다.
한동안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경험의 구조와 의미를 보고 있었고,
그는 관계 속에서 사용할 언어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층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오랜 시간 상담을 하면서 나는 점점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과하세요."
"자존감을 높이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그 말들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몰라서 상담실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왜 사과가 어려운지, 왜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는지,
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점점 행동보다 구조를, 사건보다 의미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어려움도 생겼다.
맥락과 구조를 보는 사람은 정보와 행동을 보는 사람과 자주 엇갈린다.
나는 문단을 이야기하는데 상대는 단어를 듣는다.
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데 상대는 행동을 본다.
나는 구조를 설명하는데 상대는 정답을 찾는다.
그리고 어쩌면 상대 역시 나를 보며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결국 문제는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읽는 방식의 차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모든 오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 저 사람은 저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구나."
그리고 어쩌면 성숙이란 상대를 나처럼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언어로 그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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