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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츠기의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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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15 08:13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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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것은 손실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의 전통 수선 방식인 킨츠기는
깨진 그릇의 조각을 금으로 이어 붙인다.
중요한 것은 흠을 감추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금 간 자리를 더 눈에 띄게 드러낸다.


깨진 흔적까지 그 물건의 역사로 남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처를 경험한다.
작은 실망도 있고, 오래 남는 미움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들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존재 자체를 흔든다.


특히 공개적인 수치심은 그렇다.


그것은 단지 “상처를 받았다”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무너졌다는 감각,
내 존재가 초라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경험은
사람 안쪽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


이전까지의 상처들이
실망과 미움의 수준이었다면,
어느 순간 겪었던 한 사건은
내 안의 가장 깊은 수치심을 건드렸다.


처음에는 단지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과정은 단순한 손상이 아니라,
내 무의식의 아주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정화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나는 이전처럼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적당한 거리와 역할 속에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은 상처를 지나온 뒤에는
몸과 마음이 피상적인 관계를 견디지 못했다.


억지 웃음, 습관적인 친밀감,
겉으로만 이어지는 연결들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전 관계들과 멀어졌다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혼자는 익숙해졌지만,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은 낯설었다.


아마 큰 상처 이후에는
관계의 기준 자체가 바뀌는 것 같다.


예전에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관계를 원했다면,
이제는 존재를 훼손하지 않는 관계를 찾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
금 간 자리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연결 말이다.


그래서 킨츠기의 철학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킨츠기는 파편을 버리지 않는다.
무너졌다고 새것으로 바꾸지도 않는다.


깨진 자리에서부터 다시 이어 붙인다.


그리고 그 흔적을
없애야 할 흠이 아니라
삶을 지나온 증거로 남긴다.


어쩌면 사람도 비슷한 존재인지 모른다.


우리는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깨진 시간을 포함한 채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며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금은
상처를 감추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무너진 이후에도
삶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흔적이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완성은
흠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흠까지 포함해 자기 삶을 받아들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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