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던 사람이 살아가기 시작할 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16 20:46 조회15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오랫동안 상담을 하다 보면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사라지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까지 흔들리며 머문다. 갈등 끝에 떠나는 사람도 있고, 충분히 정리한 뒤 조용히 종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이별은 조금 달랐다. 그래서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내담자는 한때 삶과 죽음의 경계 가까이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살고 싶어서 상담실에 온다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겨우 연결을 붙들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 시기의 상담은 성장이나 변화보다 먼저 “오늘을 버티는 일”에 가까웠다. 상담자는 종종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마지막 끈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상담실은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 돌아오는 장소가 된다. 그 사람은 3년 넘게 꾸준히 상담을 이어왔다. 늘 상담을 마치면 다음 예약을 하고 갔다. 그 익숙한 흐름은 단순한 일정 관리가 아니었다. 그 사람에게는 삶이 흔들릴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전감이었고, 상담자인 나에게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하나의 리듬이었다. 얼마 전부터 내담자는 남자친구와 함께 상담실에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익숙한 연결감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담이 끝난 뒤 내가 다음 예약 일정을 묻자 남자친구가 먼저 말했다. “다음에 우리가 필요할 때 연락드리면 안 되나요?” 그 순간 내담자는 곧바로 말했다. “안돼요.” 그리고 평소처럼 다음 상담 예약을 하고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장면은 이미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때의 내담자는 아직 상담 관계를 중심축으로 붙들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그 바깥에 새롭게 들어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상담이 끝난 뒤 내담자는 말했다. “필요하면 제가 미리 연락드릴게요.” 옆에는 남자친구가 조용히 손을 잡고 있었다. 묵묵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그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잘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낯설고 묘한 상실감이 남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감정은 단순히 상담이 줄어드는 아쉬움과는 조금 달랐다. 그 사람의 생존을 붙들고 있던 축이 상담실 밖의 현실 관계로 이동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본 느낌에 가까웠다. 상담은 결국 내담자가 상담자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순간이 오면 상담자는 아주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기쁘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저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관계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오랫동안 맡고 있던 역할 하나가 조용히 끝나가고 있다는 감각이 남는다. 많은 관계는 깨지면서 끝난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성장하면서 자리를 바꾼다. 이번 종결은 무너지며 떠나는 이별이 아니었다. 생존의 경계에 서 있던 한 사람이 비로소 삶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 장면에 가까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