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던 대로 죽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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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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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던 대로 죽노라”라는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다소 운명론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사람의 마지막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오히려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사람은 반복하며 살아간다.
생각하는 방식, 감정을 다루는 방식, 관계를 맺는 방식,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 오랜 시간 하나의 결처럼 몸에 스며든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붙들며 살고, 어떤 사람은 내려놓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늘 참으며 살고,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증명받으려 하며 산다.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는 단순히 성격에 머무르지 않고, 몸과 관계, 얼굴의 분위기, 삶 전체의 방향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오후 네시 속 인물들은 바로 그런 삶의 태도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 의사는 늘 질식하는 듯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상실 이후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두고, 반복적인 방문과 멈춰버린 시간 속을 맴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질식의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마치 평생 숨 막히게 살아온 삶의 분위기가 마지막 선택 안에도 스며든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를 살려낸 교수가 이후 결국 그 의사를 베개로 눌러 죽인다는 점이다.
교수 역시 교양과 체면, 억압 속에서 질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불편함과 분노를 직접 표현하지 못한 채 참아내고 해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끝내 그 억압된 감정은 실제로 타인의 숨을 끊는 행동으로 터져 나온다.
자신을 질식하게 만든 존재를 질식시켜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의사를 죽인 교수 역시 결국 폭식증으로 비대해진 의사의 아내 엉덩이에 질식한 채 죽음을 맞는다.
이 장면은 단순히 기괴하거나 블랙코미디적인 연출로만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평생 억압하고 부끄러워했던 육체성과 본능, 감정의 과잉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교수는 늘 이성적이고 교양 있는 위치에 머물고자 했던 사람이다.
그는 인간 심리를 설명하고 관계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욕망과 분노, 질식감을 솔직하게 살아내지는 못한다.
반면 의사의 아내는 몸으로 무너지는 사람이다.
상실 이후 폭식으로 감정을 삼키고, 본능적이고 과잉된 몸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교수는 자신이 평생 밀어내고 억압했던 바로 그 육체성과 과잉 속에서 질식한다.
영화는 이 장면들을 통해 인간이 결국 자신이 살아온 방식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물론 실제 삶과 죽음을 단순한 공식처럼 연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반복하며 살아가고, 그 반복은 결국 삶 전체의 분위기가 된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관계를 붙들며 살고, 어떤 사람은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두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몸으로 삼키고,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굳어져 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보다,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괜찮은 척 살아간다.
불편해도 참아내고, 상처받아도 웃고, 화가 나도 표현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런 사람을 성숙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몸의 긴장이 되기도 하고, 우울과 불안이 되기도 하며, 관계 속 거리감이나 삶의 공허함으로 남기도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신의 삶의 태도를 더 굳혀가게 된다.
젊을 때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던 부분들도 점점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며 삶의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어떤 사람은 점점 경직된다.
어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더 살아 움직이고, 어떤 사람은 점점 고립된다.
그렇기에 삶은 결국 매일의 작은 선택들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기.
조금 더 자기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기.
조금 더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기.
조금 더 미워하는 마음에만 머물지 않기.
“살았던 대로 죽노라.”
그 말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삶을 묻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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