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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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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22 10:33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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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가곡으로 들으며 문득 눈물이 났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엊그제”가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표현이었다.
계절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몸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는 흔적. 

그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애도의 시간과 닮아 있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남편과 사별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지냈던 방에서 잠들지 못했고, 때로는 그 방의 기운 자체가 무섭다고 표현했다. 

머리로는 이미 오래전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은 아직 그 시간대를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우리는 흔히 애도를 “사람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의 애도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떠난 것은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밥 먹던 시간, 문 열리는 소리, 늦은 밤의 인기척, TV 소리, 잠드는 호흡, 계절마다 

반복되던 생활의 리듬까지 함께 사라진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존재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비어 있는 방보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생활의 리듬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예전에는 가장 익숙하고 안전했던 공간이 어느 순간 낯설고 두려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 

몸은 아직 누군가가 돌아올 것처럼 반응하는데 현실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 속에서 사람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공허를 경험한다.


배우자 사별 이후 흔들리는 것은 감정만이 아니다. 

역할로 구성되어 있던 자기(self)의 일부도 함께 무너진다. 아내, 남편, 며느리, 사위, 동서와 같은 역할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챙기고, 함께 시간을 조직하던 반복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형성해간다. 

그런데 그 역할이 갑자기 할 일을 잃게 되면, 마치 피부 한 겹이 벗겨진 듯 속살이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관계 속에서 유지되던 자기 일부가 공중에 떠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애도는 단순히 “잊는 과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시간 위에 현재의 시간을 조금씩 다시 덧입혀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 

어떤 사람은 조명의 밝기를 바꾸고, 어떤 사람은 침구를 교체하고, 어떤 사람은 혼자 차를 마시는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반복들이지만, 그런 작은 변화들이 몸에게 지금의 시간을 다시 가르쳐준다.


생각해보면 애도는 늘 거창한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한 곡의 노래, 한 줄의 시, 오래된 방 안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빛의 방향 같은 것들이 사람을 아주 천천히 현재로 데려오기도 한다.


그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지나간 사람을 붙잡는 노래라기보다, 

지나간 시간이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바라보게 만드는 노래처럼 느껴졌다.

마치 한두 철 전, 연꽃을 만나고 지나간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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