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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제의에서 벗어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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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24 08:01 조회161회 댓글0건

본문

부처님 오신날이면
예전의 나는 습관처럼 절로 향했다.


연등을 달고,
두 손을 모으고,
가족의 이름을 적으며 기도했다.


그 기도의 대부분은
결국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다치지 않기를,
좌절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자신의 삶을 살아낼 힘을 가지기를 바라는
엄마의 아주 현실적이고 절실한 사랑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고3이던 시절,
그 마음은 극에 달했다.


기도가 잘 된다는 절을 찾아다녔고,
봉정암에도 여러 번 올라갔다.


돌이켜보면
그 길은 단순히 신앙의 길이라기보다,
불안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간절하게 마음 붙들 곳을 찾아 올라가던 길에 가까웠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 하나하나를 깊게 살아낸 사람이라면
방식은 달라도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
불안한 마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혹시라도 아이가 좌절할까 대신 조마조마했던 시간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단순히 양육만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 내 마음까지 함께 걸고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떠올리면
그 시절의 절 풍경과 공기,
연등의 빛 같은 것들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간절함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이해된다.


그 시절의 나는
단순히 종교적 열심이 강했던 사람이 아니라,
불안과 책임감, 사랑과 두려움을 안고
어떻게든 삶을 붙들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 필사성의 뿌리는
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닿아 있었는지 모른다.


힘들었던 나는
누군가가 대신 빌어주거나 붙들어주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부모가 된 뒤에는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을 위한 기도는
현재의 아이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과거의 나 자신까지 함께 구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안을 견딘다.


어떤 사람은 술을 붙들고,
어떤 사람은 관계를 붙들고,
또 어떤 사람은 일과 성취를 붙든다.


나는 종교와 수행, 기도와 의미를 통해
삶을 견디려 했던 사람에 가까웠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이 되면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내 마음 머무는 곳이 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습관처럼 절을 향했다.


올해 부처님 오신날에도 통도사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아, 나의 오래된 카르마가 움직이는구나.”


몸은 기억한다.


불안할 때 어디로 갔는지,
간절할 때 무엇을 붙들었는지,
삶의 중요한 날마다 어떤 장소를 향했는지를.


통도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내 오랜 시간과 감정,
기도와 불안, 위안과 희망이 겹겹이 쌓여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이전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가 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불안이 클수록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계산하게 된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오는가.”


하지만 삶을 오래 지나오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무리 기도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고,
붙잡아도 흘러가는 관계가 있으며,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어긋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도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최선의 노력은 하되 결과는 신에게 맡겨라”는 말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슴으로 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리에서 진심으로 살아내는 것까지라는 것을.
그 이후의 영역은
내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의 부처님 오신날은
예전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비는 날이라기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돌아보는 날에 가까워졌다.


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지금,
불안의 제의(祭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부처님 오신날의 감회는
“그때 참 많이 애쓰며 살았구나”를
이제야 자기 자신에게 조용히 인정해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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