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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잃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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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4-29 17:04 조회1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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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방향은 바뀌었지만, 방식은 남아 있다.


요즘 교실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장면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새로운 풍경이라기보다, 오래된 방식이 다른 방향으로 재현된 결과에 가깝다.


한때 교실은 절대적 권위의 공간이었다.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이 허용되었고, 질문보다 복종이 먼저였다.
그 시절을 통과한 세대는 ‘힘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질서를 몸으로 배웠다.


시간이 지나며 그 구조는 무너졌다.
권위는 해체되었고, 개인의 권리는 강화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힘을 덜어내는 법이 아니라, 힘을 다루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억압은 줄어들었지만, 충돌은 더 직접적이 되었다.
참았던 감정은 표현되지만, 조절되지는 않는다.
사라진 것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정당화하던 언어뿐이다.


이 흐름은 교실 밖에서도 반복된다.
한때 경제적 권력을 중심으로 남성이 관계의 주도권을 쥐던 시기가 있었다.
그 힘은 종종 통제와 억압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 역시 경제적, 사회적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관계의 구조도 변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힘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 힘을 사용하는 방식은 충분히 새로워지지 않았다.
어떤 관계에서는 억압이 사라진 자리에, 조절되지 않은 힘이 들어오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식당에서 한 장면을 보았다.
조부모와 부모, 부모의 형제자매까지 여러 어른들 사이에, 한 아이가 앉아 있었다.
사람이 가득한 공간, 소음과 연기가 뒤섞인 자리에서 그 아이는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고립된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세계 안에 머문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를 존중하는 듯 보였고, 아이는 어른들과 분리된 채 자신의 리듬에 머물러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토록 많은 보호와 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에게,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렇게 형성된 자율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조절되는가이다.

간섭 없이 유지되는 자유는,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른 기술을 요구한다.

자신의 리듬을 지키는 것과, 타인의 리듬을 함께 고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를 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자유를 관계 속에서 사용하는 법까지는 충분히 가르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것을 단순한 인과응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이는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의 문제다.

우리는 힘을 견디는 법은 배웠지만, 힘을 사용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누가 더 많은 힘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힘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


폭력으로 세운 질서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질서가 무너질 때, 남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향 잃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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