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거나, 커지거나: 몸이 선택한 생존의 방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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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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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점점 사라지듯 말라가고,
어떤 사람은 점점 더 단단해지며 커진다.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 두 방향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 질문에 답한다.
말로 표현되기 전에, 이해되기 전에,
몸은 이미 하나의 방향을 선택한다.
사라질 것인가,
혹은 버티기 위해 더 커질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상담실에서 마주하는 구역질, 체중 변화, 피부 증상은
단순한 이상 반응이 아니라
몸이 선택한 생존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시도한다.
구역질은 삼킬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낸다.
어떤 경험이나 기억, 혹은 그때의 자기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몸은 그것을 밀어내려 한다.
이때 구역질은 단순한 위장 반응이 아니라
혐오와 자기거부의 표현이 된다.
“이건 내 안에 둘 수 없어.”
피부는 나와 타인을 나누는 경계다.
그래서 피부가 벗겨지거나 무너질 때,
그 안에는 경계가 무너졌던 경험이나
지금의 자신을 벗어나려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 상태의 나를 벗어나고 싶다.”
몸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면
먼저 호흡이 흔들린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막히는 순간은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감정이 몸의 용량을 넘어섰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건 다 담아낼 수 없다.”
어떤 몸은 긴장을 유지하는 형태로 버틴다.
굳은 목과 어깨, 반복되는 두통 속에는
놓을 수 없는 책임과
계속 버텨야 했던 시간이 남아 있다.
“내가 내려놓으면 무너진다.”
그리고 어떤 몸은 결국 지쳐버린다.
충분히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라
이미 오래 버텨온 결과일 수 있다.
“더는 버틸 힘이 없다.”
이 생존 방식은 결국, 몸의 ‘크기’로도 드러난다.
어떤 몸은 줄어드는 방향을 선택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안전했던 사람에게
작아지는 것은 전략이다.
“줄어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반대로, 어떤 몸은 커지는 방향을 선택한다.
가족 안에서 과도한 책임을 떠안아온 사람들,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온 사람들,
늘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경우,
몸은 점점 더 단단하고 크게 변해간다.
이 변화는 단순한 체형의 문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구조다.
“버티기 위해 더 커져야 한다”
그래서 어떤 몸은 사라지려 하고,
어떤 몸은 오히려 더 존재하려 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신체화는 제거해야 할 증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말해지지 못한 경험이 선택한 마지막 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이 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는가
내 몸은 무엇을 대신 살아내고 있는가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신체화를 다룬다는 것은 결국
증상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말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은 더 이상 혼자서 버티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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