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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회수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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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06 08:07 조회154회 댓글0건

본문


내 마음이 여릴 때는 늘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릴 때는 부모였고, 자라면서는 친구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연인과 인연이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아이들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을 때
나는 비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거의 생존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각자의 삶으로 떠났다.
집은 조용해졌고,
나는 비로소 혼자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마음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누군가로 채워야 안정되던 내가
이제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졌다.


관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이 바뀐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부부라기보다 동거인에 가깝다.
서로의 삶을 과하게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며 살아간다.


필요하면 함께하고,
여유가 없으면 각자 지낸다.


겉으로 보면 편안한 구조다.
하지만 사람의 기척이라는 것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같이 있어도
완전히 혼자는 아닌 상태.


그 미묘한 긴장 속에서
나는 가끔 숨이 막히는 순간을 만난다.


그럴 때 나는 집을 나선다.


아파트 안에 있는
낮은 언덕을 따라 둥글게 이어진 산책길.
어딘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돌아와도 되는 길.


그곳에는

산책하는 이름 모를 이웃이 있지만,
내 마음은 산새와 들고양이에게 머문다.


사람은 아니지만
완전히 고립되지도 않는,
느슨하게 연결된 생명의 기척이 흐른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몸이 먼저 풀린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의식하지 않아도 호흡이 깊어진다.


그때 알게 된다.


아,
지금 나는 나로 돌아오고 있구나.


나는 이 순간을
‘나를 회수하는 순간’이라고 부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동안에도
나는 충분히 나였지만,


그 속에는
역할과 기대와 익숙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는
아무 역할도 없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나 또한 누구를 책임지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는 상태로
나를 다시 만난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마음이 참 좋다.


그들이 머무는 동안
나는 다시 한 번
누군가의 세계가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시 떠나고 나면
몸이 편안해진다.


공간이 느슨해지고
숨이 돌아온다.


마음은 머물고 싶어 하고,
몸은 풀리고 싶어 한다.


그 두 감각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가끔
조용히 젖는다.


그래서 나는 안다.


지금의 나는
완전히 혼자여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함께여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도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


그곳에서 가장 편안하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요즘
그 길을 자주 걷는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그 길은 이제
나와 만나는 나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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