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내가 선택하지 못한 흔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5-08 13:17 조회14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나의 사랑하는 세뇨리타[를 보다가 울었다. 영화 속 인물은 두 개의 성기를 모두 가진 채 태어났고, 어린 시절 부모와 의사의 선택으로 여성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다.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며 긴 머리와 치마를 입고 자라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몸과 욕망,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의 몸 안에 남성의 성기가 존재했었고 그것이 무지한 판단 속에서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타인의 기대 속에서 자란다. 부모가 원하는 아이, 사회가 보기 편한 사람, 관계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조정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은 단순히 성격이나 진로를 통제당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 자체를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 사실이 너무 아팠다. 영화 속 인물은 여성으로 살아갈 때 긴 머리와 흰 블라우스, 긴 치마를 입고 등장한다. 이후 남성호르몬을 복용하며 짧은 머리와 셔츠, 바지를 입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짧은 머리에 코르셋을 착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장면은 마치 “나는 어느 하나로 완벽히 정리되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혼란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인간의 진실에 가까운 장면처럼 보였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몸과 욕망, 감정과 자기 인식은 늘 깔끔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은 너무 쉽게 사람을 규정하려 한다. 남자 혹은 여자, 정상 혹은 비정상, 이쪽 혹은 저쪽으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인간의 복잡성과 고통은 지워진다. 영화를 보며 나는 문득 사춘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했던 기억. 내 선택보다 부모의 기준이 더 중요했던 시간들. 그 흔적만으로도 사람은 오래 흔들린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내 욕망인지, 아니면 타인의 기대에 맞춰진 욕망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은 취향이나 진로가 아니라, 몸의 방향 자체를 타인에게 결정당했다. 그래서 나는 더 깊이 울었던 것 같다. 우리는 흔히 폭력을 거칠고 위협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라는 명목으로, “너를 위한 선택”이라는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폭력이 종종 무지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영화는 결국 성별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타인에 의해 규정된 삶”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삶을 정의하고 통제하는 존재인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아가며 한 번쯤 묻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정말 내가 선택한 나인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