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피가 벗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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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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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맡은 역할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누군가는 조직 안에서 성실하게 버텨내는 사람으로,
또 누군가는 누군가를 돌보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지 삶의 역할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역할은 점점 존재와 붙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가
어느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되어버린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던 한 사람은
어떤 사건 이후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겉으로는 퇴사였지만,
실제로 무너진 것은 직장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자신이 버텨온 시간,
쌓아온 신뢰,
자존감,
그리고 스스로를 설명하던 방식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일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흔들리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남편과 사별한 뒤
극심한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 전에는 친정을 돕는 딸로 살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헌신하는 아내로 살아왔다.
삶의 대부분이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그 사람은 남편을 마지막으로 실어 나른 엠뷸런스 소리만 들어도 귀를 막았고,
비슷한 차만 보아도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한 애도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더 깊은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대상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그 대상과 함께 유지되던 자기 존재의 구조 자체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외피를 입는다.
직업, 관계, 책임, 신념, 역할, 평판.
그것들은 단지 사회적 기능이 아니라
존재를 보호하는 피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역할이 사라질 때 사람은
단순히 상황의 변화를 겪는 것이 아니라,
외피가 벗겨진 채 자신의 속살을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사람은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역할이 없어도 나는 존재할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아도 나는 살아갈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그 질문 앞에서 불안해지고,
어떤 사람은 수치심 속으로 숨어들고,
어떤 사람은 세상과 거리를 둔 채 고립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이 처음으로 역할 밖의 자신을 만나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역할로 살아가지만,
존재 자체는 역할보다 더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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