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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다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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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4-11 09:12 조회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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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다리 사이 — Incendies가 불러낸 기억


어둡고 좁은 감옥 안에서 한 여자가 반복해서 걸음을 옮긴다. 왔다 갔다, 

같은 길을 지우듯이, 혹은 새기듯이. 영화 속 그 장면을 보다가 나는 울었다. 

단순한 장면이었지만, 그 움직임이 내 안의 어떤 시간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이다.


다섯 해 전, 나 역시 비슷한 걸음을 걸었다.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였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발이 날리던 날에도 나는 공원의 둘레를 돌 때도

나는 늘 다리를 건넜다. 

연못은 두 개였고, 다리도 두 개였다. 

나는 그것을 빠짐없이, 반복해서 건넜다.


왜였을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어디론가 가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 무엇인가를 붙잡기 위한 행위에 가까웠다. 

너무 간절해지면 사람은 형태가 있는 것을 붙들고 싶어진다. 

다리라는 구조물, 물 위를 건너는 감각, 같은 동선을 반복하는 리듬. 그것들은 무너지지 않는 무엇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시간은 마치 저승을 두 번 다녀오는 일과도 같았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상태. 나는 그렇게 두 해를 걸었다.

다리만이 아니었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나는 그 나무들을 끌어안았다. 

사람 대신 나무에 몸을 기대고, 내가 붙인 이름을 불렀다. 

그것은 거의 기도에 가까웠다.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다면 이걸로 사하고 살려 달라는, 혹은 버텨 달라는.


영화 속 장면은 그 기억을 다시 끌어올렸다. 

감옥에 갇힌 여자가 나무를 붙잡고 죽은 남자의 이름을 부르던 순간, 나는 다시 울었다. 

그 장면은 이야기의 일부이기 전에, 감정의 구조로서 나에게 닿았다. 

어떤 상실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몸짓.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울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저 마음 알지.”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보다, 

감정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을 때 더 깊은 이해가 찾아오기도 한다.


몇 해 동안 나는 그 공간을 걸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음이 무너져 있던 날에도, 물 위와 나무 사이에는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내 상태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였다.


그리고 작년,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연못도, 다리도 그대로였다. 

나는 예전처럼 두 개의 다리를 모두 건넜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도, 아름다움도.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같은 장소, 같은 동선, 같은 몸짓. 

그러나 전혀 다른 감각. 그것은 회복이라기보다, 통과에 가까웠다. 

그때의 나는 그 다리 위에 있었고,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건너온 사람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감옥과 다리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기에는 갇혀 있고, 어떤 시기에는 건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반복이 결국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는 사실이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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