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바꿔서 살아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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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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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바꿔서 살아온 사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감정이 없는 것 같아요.”
혹은
“왜 나는 울어야 할 때도 아무렇지 않을까요.”
하지만 임상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경우,
그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감정에는 층이 있다.
가장 아래에는
슬픔, 서운함, 두려움, 외로움과 같은
1차 감정이 있다.
이 감정은
상황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 위에는
분노, 짜증, 냉담함, 거리감, 심지어 소름과 같은
2차 감정이 놓인다.
이 감정은 단순히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대개 1차 감정을 보호하거나 가리기 위해 형성된다.
2차 감정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첫째 평가형 2차 감정이다.
죄책감, 수치심, 자기비난
이 감정은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된다”는
내면의 기준과 판단에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슬픔을 느끼는 순간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라는 생각이 올라오면
슬픔 위에 수치심이 덮인다.
둘째 방어형 2차 감정이다.
분노, 짜증, 냉담함, 거리감, 혐오
이 감정은
1차 감정을 직접 느끼는 대신
다른 감정으로 바꿔서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좌절되었을 때
그 슬픔 대신
“짜증”이나 “싫다”는 감정으로 바뀐다.
우리는 왜 감정을 바꿔 느끼게 되는가.
아이는 태어날 때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존재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
"울지 마라”
“그 정도는 참아야지”
“예민하다”
“부담 주지 마라”
이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그 감정은 여기서 허용되지 않는다.”
그때 아이는 선택한다.
느끼는 방식을 바꾸기로.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표면 아래로 내려가고
그 위에 다른 감정이 덮인다.
특히
“잘하는 사람”, “버티는 사람”, “맞추는 사람”은
감정보다 수행이 먼저인 삶을 산다.
그래서 감정을 놓친다.
서운함을 느끼기보다 더 잘하려 하고
억울함을 표현하기보다 더 참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대신 더 헌신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감정은 점점 직접적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다른 형태로 변환된다.
그 결과
슬픔 대신 분노가,
상처 대신 냉담함이,
외로움 대신 거리감이 자리 잡는다.
“소름”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아 있는 마지막 형태의 감정이다.
슬픔을 오래 견딘 사람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대신 멀어진다.
그렇다면 2차 감정은 문제인가.
많은 사람들이
2차 감정을 “가짜”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차 감정은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만든
보호 장치다.
평가형은 나를 통제하기 위해
방어형은 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언제까지나 같은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감정을 다시 느낀다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사람은 감정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해온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감정을 찾으려 하기보다
이 질문이 더 정확하다.
“나는 무엇을 느끼지 않기 위해
지금 이 감정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열리는 순간,
감정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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