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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기억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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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4-28 21:34 조회1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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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시력을 말하지만, 눈은 기억을 본다


사람들은 눈을 이야기할 때 시력을 먼저 꺼낸다.
몇 점 몇인지, 얼마나 또렷하게 보는지.
그 수치는 분명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시선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눈은 단순히 사물을 구별하는 기관이 아니다.
눈은 하나의 창이다.

그 창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동안 무엇을 보아왔는지에 따라 세계를 해석한다.
같은 장면 앞에 서 있어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고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처음 눈에 담긴 장면은 유난히 선명하게 남는다.
이후에 본 것들은 그보다 덜 강하게 스치지만, 반복되면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그 흐름은 어느 순간 패턴이 되고, 우리는 그 패턴을 통해 세계를 읽는다.
마치 시력이 형성되듯, 보는 방식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묻고,
다른 누군가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말한다.


어떤 눈은 상처를 먼저 발견한다.
비슷한 결의 장면을 빠르게 알아보고, 익숙한 감정으로 돌아간다.
어떤 눈은 가능성을 찾는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남아 있는 여지를 끝까지 따라간다.
그리고 어떤 눈은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을 피해간다.
그러나 외면된 장면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시야에 스며든다.


이 차이는 가족 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형제자매가 전혀 다른 기억을 말하는 이유다.
누군가는 아버지를 엄격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그를 묵묵히 버티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사실의 차이라기보다 시선의 차이에 가깝다.
어떤 자녀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어떤 자녀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어머니를 이해한다.
그렇게 빌려온 시선과 스스로 만들어낸 시선이 겹쳐지며, 각자의 ‘보는 방식’이 형성된다.


이러한 차이는 관계의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많은 갈등을 들여다보면, 각자는 성장 과정에서 보아온 것들을 붙잡고 있다.
자신이 본 것이 너무 중요해진 나머지, 다른 시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으면서도, 같은 세계를 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충돌이 생긴다.


그래서 눈동자에는 늘 지금 바라보는 사람이 담긴다.
우리는 상대의 눈을 통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읽게 된다.
그 눈이 어디에 오래 머물러 왔는지에 따라, 같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조차 달라진다.


결국 우리가 보고 있다고 믿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라기보다
그동안의 경험과 기억이 통과된 하나의 해석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객관이라 여기고, 옳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본 대로가 아니라, 본 것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를 보면서 그것을 객관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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