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그때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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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그때 최선을 다합니다
처음은 고통이었죠.
어떤 순간의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반응합니다.
가시밭길 위에 선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그저 멈춘 것이 아니라 그날의 조건 안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한 결과입니다.
숨을 낮추고, 말을 삼키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습니다.
몸은 그렇게 살아남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그날의 장면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형태로 반복됩니다.
우리는 종종 그때의 자신을 다시 불러 세웁니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지.”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몸을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폭력이나 위협을 경험한 이후에는,
존재 자체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를 증명하려 합니다.
잘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숨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빛’은 겉으로는 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작은 틈이 생기면, 그 빛은 쉽게 방향을 바꿉니다.
완벽하지 못한 순간,
오래전의 장면이 다시 열리고,
우리는 다시 심판대에 서게 됩니다.
그때의 선택을 문제 삼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마저 의심하게 됩니다.
익숙한 상처 쪽으로 방향을 트는 이 반복 속에서, 빛은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걷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몸의 신호는 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날의 떨림은 비겁함이 아니라 위험을 감지한 반응이었고,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몸은 언제나 그 순간 가능한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설명이 아니라,
다른 판결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자신을 다시 불러 세우는 대신,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일.
더 묻지 않고, 더 따지지 않고,
그때의 몸이 했던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 판결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때, 반복되던 장면은 조금씩 힘을 잃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뒤로 향하던 빛은, 비로소 방향을 바꿉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머물 수 있게 되면서.
어쩌면 회복은 특별한 변화라기보다,
그날의 자신을 더 이상 심문하지 않는 순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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