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기로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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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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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훔치면서 존재를 유지한다.
물건이 아니라, 상태를.
어떤 사람은 안정감을,
어떤 사람은 관계의 온기를 훔친다.
누군가는 타인의 시선을,
누군가는 그 안의 자리를 훔친다.
이 훔치기는 범죄가 아니다.
대개는 들키지 않고,
때로는 스스로도 모른 채 이루어진다.
그래서 오래 지속된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는
타인의 삶에 머무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잘 가꿔진 집을 찾아가
식탁에 앉고,
대화를 듣고,
온기를 조금 더 오래 쥐고 있으려 한다.
그 장면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초대받은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내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경계는 무너진다.
그녀는 자기 삶의 부재를
그 집의 일부가 되어 채우고 싶어 한다.
정확히는
그 집이 가진 상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 집의 아들에게
감정이 향한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그 삶 안으로 들어가려는 욕망에 가깝다.
우리는 여기서 불편해진다.
그녀가 훔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훔치기는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한 것이다.
어린 시절,
사랑이 부족했던 자리에서
사람은 배운다.
끌어당기는 법을.
눈빛 하나,
칭찬 한 조각,
잠깐의 온기라도
내 쪽으로 당겨
내가 여기에 있음을 확인하는 법을.
그때의 훔치기는
욕심이 아니다.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 멈추지 않을 때 생긴다.
자기 삶을 가꾸지 못한 채
타인의 삶에 기대어
그 안에서 자신을 확인하려 할 때,
그 사람은 계속
타인의 계절에 손을 넣는다.
하지만 그 손은
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정원은 빌릴 수 있어도
계절은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누군가는 삶을 가꾸고,
누군가는 그 삶에 머문다.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넘는 순간,
훔치기는 시작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훔치며 존재를 확인할 것인가.
훔치지 않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순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아마도 시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맥박이 들릴 때일 것이다.
세게 뛰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을 듣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타인의 빛을 세지 않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나는
훔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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