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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기준이 더 이상 나를 데려가지 못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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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0 13:52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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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잘하는 아이’였던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고,
중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삶이 멈춘다.


취업을 준비하다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시험에 계속 실패하거나,
직장에 들어간 뒤 예상했던 만큼의 성취를 얻지 못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는 경우가 있다.


오랫동안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온 것이
자신의 기준이라기보다 외부의 기준이었을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업을 얻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삶에는 비교적 분명한 경로가 제시된다.


외부 기준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기에 사회의 규칙을 지켜야 하고,
다른 사람의 기대와 현실적인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외부 기준 자체가 아니라
그 기준과 나 사이에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외부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다 보면
삶을 경험하기보다 삶을 평가하게 되기도 한다.


잘했는가, 못했는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남들이 인정할 만한 삶인가.


그렇게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되어버리면
만족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순간에만 허락되기 쉽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만족하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만족하고,
승진하면 만족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만족한다.


하지만 하나의 꼭지점에 도달하면
삶은 다시 다음 꼭지점을 향한다.


그래서 외부 기준으로 만들어진 삶의 꼭지점은
비교적 제한되어 있고,
그 꼭지점에 도달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외부 기준은 나를 어느 곳까지 데려갈 수 있지만
그곳에 도착한 뒤 어디로 갈 것인지는
더 이상 말해주지 못한다.


반면 내부 기준은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나에게 맞는지를 살펴보게 한다.


이때 삶은 평가의 대상이기보다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오늘 내가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었던 경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조금 해낸 경험,
어제보다 나에게 조금 더 솔직했던 경험,
힘들지만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경험.

이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큰 성취로 평가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삶 안에서는
분명 하나의 의미 있는 순간이 된다.


그래서 내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서는
만족의 꼭지점도 하나일 필요가 없다.


삶의 곳곳에서 여러 개의 작은 꼭지점을 만날 수 있다.


어떤 날은 관계에서,
어떤 날은 일에서,
어떤 날은 배움에서,
또 어떤 날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외부 기준이 목적지에 가깝다면
내부 기준은 나침반에 가깝다.


나침반은 나를 특정한 한 곳에 데려다주는 도구가 아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렇다고 내부 기준이
‘내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뜻도 아니다.


외부의 기준도 필요하고,
현실의 조건도 고려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도 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


외부 기준을 그대로 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조정하면서
내 삶의 방향과 관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은
외부 기준을 충족했을 때가 아니라
그 기준이 더 이상 나를 데려가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무엇을 이루어야 만족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나는 내 삶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가.


남들이 말하는 괜찮은 삶과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은 같은가.


그리고 결국 가장 깊은 질문에 닿는다.


내 삶에서 만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외부 기준은 나를 어느 곳까지 데려갈 수 있다.


그러나 그다음 길까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외부의 기준을 따라가는 사람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방향을 정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그때부터 삶은
하나의 정상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개의 꼭지점을 지나며
자신의 방향을 확인해가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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