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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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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0 22:22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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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야 하며, 남들과 다른 나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다움’마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또 다른 숙제가 되면, 

우리는 이번에는 ‘나답지 못한 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잘하고 있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내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외부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사회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배워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일이 있다. 

외부의 기준을 참고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곧 나의 가치가 되어버릴 때 시작된다.


‘이 정도는 해야 괜찮은 사람이다.’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이런 기준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바깥의 목소리가 내 안의 목소리가 된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작은 감옥을 마음 안에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벌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잘못했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과, 잘못한 자신을 계속 벌주는 것은 다르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내 존재 전체의 죄로 만들 필요는 없다.


반대로 누군가의 잘못을 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책임에는 경계가 있지만, 죄책감에는 경계가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책임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한 일은 나의 몫으로 가져오고, 남이 한 일은 남의 몫으로 돌려놓는 것.

그리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죄로 만들지 않는 것.


얼마 전 아주 작은 생명체가 거대한 짐을 싣고 움직이는 영상을 보았다.


키네신이라는 단백질이었다. 

두 개의 머리가 다리처럼 번갈아 움직이며 세포 안에서 물질을 운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다른 키네신보다 잘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자신의 구조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물론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선택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때때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묻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질문이 나를 삶에서 빼놓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외부의 기준을 따를 수는 있다.


경쟁할 수도 있고, 노력할 수도 있고, 잘하지 못한 것을 배우며 다시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을 삶에서 소외시킬 필요는 없다.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애썼다고 해서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기쁘면 기쁜 대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다시 걸으면서.


나다움은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나답게 살려고 애써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삶에서 빼놓지 않고 살아온 시간 뒤에 남는 것.

그래서 나다움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인지도 모른다.


뒤돌아보았을 때


내가 걸어온 자리마다 남아 있는 것.


그것이
나다움의 발자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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