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닿았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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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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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있던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마음이 허전해질 때가 있다.
물건 몇 개가 빠져나갔을 뿐인데, 그 자리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진다.
물건이 차지하던 공간보다 그 물건에 담겨 있던 시간이 더 컸던 모양이다.
며칠 전 아들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들이 사용하던 영어책과 일본어 책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기타 악보를 펼쳐보았다.
어린 시절 사용하던 물건과 한때 좋아했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이제 필요하지 않으니 버려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버려도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한동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물건을 버리는 일이 어려운 것인지, 그 물건과 함께했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하던 아들과 함께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사용하던 물건에는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공부하던 흔적, 좋아하던 것의 흔적, 누군가를 사랑했던 흔적.
그 물건을 바라보면 물건보다 그것을 사용하던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때때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한때 내 삶에 닿아 있던 한 사람의 시간을 조금씩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며칠 전 상담에서도 이별의 힘듦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다른 상담에서는 몇 년 전 떠난 사람을 여전히 그리워하며,
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을 바라보다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다른 이별이지만 그 마음에는 닮은 점이 있었다.
사람은 떠났는데 사랑은 곧바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이 삶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 사람을 향했던 마음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한동안 갈 곳을 잃는다.
함께 걷던 길에 닿던 사랑이 더 이상 그 길에 닿지 못하고,
매일 나누던 말에 닿던 사랑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하고,
돌봄으로 표현되던 사랑이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곳에 놓인다.
그때 생기는 것이 허전함인지도 모른다.
허전함은 단순히 무언가가 없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이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닿을 수 없을 때 생기는 빈 공간이다.
그래서 이별한 사람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사별한 사람의 물건을 보며 눈물이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건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이 한때 사랑이 닿아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늘 같은 모습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헤어짐으로 끝나기도 하고, 죽음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기도 하며,
자녀가 성장해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부모가 맡았던 돌봄의 역할이 끝나기도 한다.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거나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사랑이 닿던 방식은 달라진다.
그 변화가 마음보다 먼저 현실에 나타날 때가 있다.
비워진 방, 남겨진 물건,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전화, 혼자 남은 식탁처럼.
그 자리를 바라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래서 허전함을 너무 빨리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빈자리를 서둘러 채우는 대신,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볼 수도 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었구나.’
‘여기에 내 사랑이 닿고 있었구나.’
그렇게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사랑은 때로 사람에게 닿고, 때로 물건에 머물고, 때로 기억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대상은 그대로인데도 사랑의 방식이 달라진다.
곁에 두는 사랑에서 기억하는 사랑으로,
돌보는 사랑에서 지켜보는 사랑으로,
함께하는 사랑에서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사랑으로.
그러고 나면 빈자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빈자리를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곳이 더 이상 상실만을 의미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때 사랑이 닿았던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허전함은 사랑의 반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는 동안 잠시 생겨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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