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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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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2 15:40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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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업을 얻고, 돈을 벌고, 집을 마련하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곳으로 여행한다.


어쩌면 이런 삶의 방식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흔적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전쟁을 겪고 폐허에서 삶을 다시 세워야 했던 세대에게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감정이나 마음의 여유는 어쩌면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다음 세대는 산업화 속에서 더 잘살기 위해 달렸다.


무엇을 느끼는가보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무엇을 갖추었는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달려왔고, 어느 정도 물질적인 풍요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제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여기서 말하는 ‘느낀다’는 감정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화를 크게 내고, 펑펑 울고, 흥분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의 감정을 잘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눈물이 나고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나는데도
“나는 지금 슬프다”라고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화를 내면서도
그 화 아래에 두려움이 있었는지, 서운함이 있었는지, 억울함이 있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몸은 강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정서는 아직 하나의 덩어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기쁘다는 것과 흥분되어 있다는 것도 다르다.


몸의 각성도가 높아져 흥분된 상태와
“나는 지금 기쁘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알아차리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느낀다’는
감정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구분하여 경험하는 것에 가깝다.


정서가 덩어리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슬프구나.”
“나는 서운했구나.”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구나.”
하고 조금씩 분화되어 나의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할 때에도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것을 이루고 나서 무엇을 느끼고 싶은 것일까.


성공하고 싶은 이유가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돈을 벌고 싶은 이유가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좋은 집을 갖고 싶은 이유가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대개 사건에서 마음으로 간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거꾸로 해볼 수도 있다.


사건은 각각 다르지만, 그 사건을 통해 느끼는 마음은 같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고 싶은 마음을 꼭 하나의 사건이나 결과에 맡겨둘 필요는 없다.


성공해야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가져야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한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질문의 방향을 바꿔볼 수 있다.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에서
무엇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로.


내가 원하는 감정을 먼저 알고 나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방법도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목표를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충분히 애써서 이루어가면 된다.


다만 원하는 감정을 미래의 어떤 조건이 갖춰진 뒤에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집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고,
안정적인 삶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준비 때문에 지금 느끼고 싶은 감정까지 전부 보류할 필요는 없다.


감정은 미래를 위해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는
몇 개의 나라를 다녀왔는지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러 나라를 다녀오고 나면
관심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몇 개의 나라를 더 가보는 것보다
한 나라의 골목을 천천히 걷고,
그곳의 음식을 먹고,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곳의 시간을 깊이 경험해보고 싶어진다.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좋은 것을 갖고,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삶을 넓혀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채우고 나면
삶의 질문도 달라질 수 있다.


얼마나 더 가질 것인가에서
지금 가진 것을 얼마나 깊이 느끼고 있는가로.


남과 비교하는 삶은 끝이 없다.


조금 더 좋은 것을 가지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보이고,


조금 더 나은 곳에 가면
그보다 더 나은 곳이 보인다.


비교를 기준으로 삼으면
도착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행복도 즐거움도
현재에 머물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


더 좋은 집을 얻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좋은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다른 사람의 여행을 보며 부족함을 느끼고,


이미 충분히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때는 어느 정도 물질적인 풍요가 있었는데도
늘 더 좋은 곳이 있었고,


그래서 이미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충분히 만족하며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면
그때도 참 좋았는데,
그때의 좋음을 조금 더 누렸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그때의 나를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때는 더 나은 것을 향해 가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었고,


그렇게 달려온 덕분에 지금의 삶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더 좋은 것을 얻는 것과
그것을 통해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것을.


더 좋은 것을 계속 찾아가는 삶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금의 삶을 느끼는 일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어느 정도 양을 채웠다면
이제는 질을 경험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더 많은 나라를 가는 것에서
한 나라를 깊이 경험하는 것으로.


더 좋은 것을 갖는 것에서
이미 가진 것의 좋음을 충분히 느끼는 것으로.


더 많이 이루는 것에서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것으로.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려온 나머지
무엇을 놓쳤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죽음의 문턱에서야 알아차린다면
조금 늦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살아 있는 동안
한 번쯤 물어보고 싶다.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나는 무엇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그동안 먹고살기 위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느라 뒤로 미뤄두었던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조금씩 삶으로 돌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느끼고 싶은 마음까지 미래로 미루지는 말자.


원하는 감정을 하나의 결과에 종속시키지 않고,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순간을 지금의 삶 안에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미 내 삶에 들어와 있는 좋은 것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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