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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게 해주는 것과 자기 삶을 살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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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2 22:07 조회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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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삶은 무엇보다 살아남는 일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은 책임지고, 

가족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도 자연스럽게 생존의 언어를 닮아간다.


잘 먹고, 잘 배우고, 직업을 갖고,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
자녀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미리 판단하고 대신 결정해주는 것.

그것은 무관심과는 정반대에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책임지는 사랑일 수 있다.


문제는 책임이 커질수록 상대의 삶까지 대신 책임지게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어떤 선택이 좋은지 정하고, 

그 선택을 이루도록 움직이는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사랑과 책임의 경계가 흐려진다.


‘내가 잘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내가 결정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면 자녀는 잘 자랄 수 있다.


필요한 것을 제공받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며, 해야 할 일을 잘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자라는 것과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결정해주었다면, 나는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지, 

선택한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삶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직업이나 관계에 대한 고민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을 수 있다.


‘이 삶은 누구의 삶인가.’


생존의 언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삶의 언어는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는다.


생존의 언어에서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언어에서는 내가 그 삶의 주체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성장한 자녀가 부모가 정해준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려 할 때, 

부모에게는 그것이 책임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시작하는 과정일 수 있다.


부모가 대신 결정해주던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이 결정하는 자리에 앉는 것.


잘못 선택할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날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부모가 자신을 잘 살게 해주려고 했다는 사실과
이제 자신이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부모에게는 부모가 살아온 방식이 있고,
자녀에게는 자녀가 살아가야 할 방식이 있다.


어쩌면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은
자녀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자녀에게 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살게 해주는 것과
자기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잘 만들어주는 일이고,
후자는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자리를 돌려주는 일이다.


사랑은 때로 대신 해주는 데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대신하지 않는 것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잘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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