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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정의 바탕,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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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3 14:38 조회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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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물을 다듬고 파를 까고 부추의 진잎을 골라내는 일이 익숙하다.

가끔은 이런 일이 재미있기도 하다.


오늘 문득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릴 때 엄마의 손을 도와 파를 까고 나물을 다듬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내 손이 필요할 때는 대개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날이었다. 

명절처럼 사람들이 모이거나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내게 음식을 준비하는 일에는 이상하게도 기쁜 기분이 배어 있었던 것 같다.


파를 까는 기억에는 또 다른 장면도 있다.


명절을 앞두고 텃밭에서 파를 뽑아 마당 한켠에 자리를 펴고 파를 까던 때였다. 

도시에서 살던 언니가 집에 오면 짐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아 함께 파를 깠다. 

파를 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작은오빠와 남동생과 주로 있던 집에서 늘 언니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언니가 내 옆에 앉아 함께 파를 까던 그 시간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때 언니의 가방에는 도시에서 가져온 선물도 들어 있었다. 

옷이나 책, 잡지, 립스틱 같은 것들이었다. 

선물은 나중에 하나씩 꺼내 주었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은 

선물보다 마당 한켠에 나란히 앉아 파를 까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다.


그런데 파에는 아주 아픈 기억도 있다.


노후를 준비하며 기장 쪽에 밭을 하나 마련했고, 

그곳에서 파를 농사짓던 분들이 있었다. 

그 파밭을 잃은 일은 내게 큰 상실이었다.


그 후 한동안 파를 멀리했다.


시장에 가도 까놓은 파 한 줌을 사는 정도였다.


한동안 나는 파 한 단을 사서 직접 까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명절 준비를 하면서 파 한 단을 사 왔다.


한 줄씩 껍질을 벗기고, 다듬고, 일부는 데쳐 산적을 부칠 생각을 하고, 

일부는 잘라 냉동해 두고, 나머지는 파김치를 담그려고 손질했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파에는 큰 상실의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도 있었고, 명절의 기억도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파전을 부쳐 먹던 기억도 있었다. 

언니가 내 옆에 앉아 함께 파를 까주던 기억도 있었다.


하나하나만 보면 별것 아닌 작은 기억들이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번 쌓여 있었다.


어쩌면 큰 상실 하나보다 잘잘한 많은 좋은 기억들이 더 오래 파를 지켜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담을 하다 보면 현재의 작은 사건이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을 건드려, 

지금의 일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만난다. 

과거의 감정이 현재로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와 같은 일이 긍정적인 감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내 손으로 경험했다.


파 한 단을 까는 작은 일이 과거의 여러 좋은 기억을 함께 불러왔다.


억지로 좋은 면을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파를 까고 있었을 뿐인데 기억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나는 그동안 어떤 일에 대해 무조건 좋게 생각하라는 조언을 들을 때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는데 

좋은 의미를 덧붙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그런 긍정이 때로 인공조미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경험한 긍정은 달랐다.


상실을 없애려고 하지도 않았고, 파를 좋아한다고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그 상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나니 

파 안에 원래부터 들어 있던 좋은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천연조미료처럼.


돌이켜보면 나는 파밭을 잃은 뒤 약 3년 동안 파 한 줌으로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파 한 단을 마주했다.


상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파를 상실 하나로만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파에는 엄마가 있고, 언니가 있고, 명절이 있고, 

사람들이 모이던 날이 있고,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그래서 오늘은 어쩌면


파 한 줌이 파 한 단이 된 날인지도 모르겠다.


파의 양이 늘어난 날이 아니라,
파 안에 들어 있는 내 기억의 자리가 다시 넓어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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