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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무게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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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4 16:29 조회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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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명절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가족이 함께 살거나 가까이 지냈고, 

며느리는 시댁에 먼저 가서 명절을 보내고 나서야 친정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명절 뒷날에도 시누이들이 찾아오면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마치고 친정에 가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시어머니도 있었다. 

다행히 내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어서, 

나는 비교적 편하게 친정에 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음식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명절에 먹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명절에 일한 며느리에게 돌아가는 몫처럼 음식을 잔뜩 싸주었고, 

그렇게 가져온 음식은 집에 돌아가서도 한참 먹었다. 

어떤 음식은 다음 명절까지 남아 있기도 했다. 

음식의 양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생활 방식이었다.


하지만 많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몸을 힘들게 했다. 

명절이 끝나면 녹초가 되었고, 그렇게 지친 몸으로 함께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때로는 내가 상처를 받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몸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역할 수행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해야 하고, 저것을 해야 하고, 

아직 남은 일이 무엇인지 살피다 보면 정작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이나 관계를 바라볼 여유가 줄어든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게 된다. 

함께 모인 자리가 어느 순간 서로 편안하게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피로와 눈치를 살피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경험했던 이런 명절의 분위기를 딸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명절의 의미를 없애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함께 모이고, 음식을 나누고, 가족이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은 남기고 싶다. 

다만 그 무게의 순서를 바꾸고 싶다.


음식은 한두 끼 먹을 정도면 충분하다. 

많이 차려놓기보다 함께 만드는 과정을 하나쯤 넣어보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는 딸과 사위가 오기 전에 산적구이 영상을 보내며 “이런 거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밑재료는 내가 일차적으로 손질해두고, 셋이 함께 꼬지에 재료를 끼웠다. 딸과 사위는 굽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 해보는 아이들이라 앞에서 구운 판을 그대로 사용해 조금 검은 자국이 묻기도 하고, 

밀가루를 덜 털어내 흰 가루가 남기도 했다. 

잠시 ‘내가 혼자 했으면 벌써 끝났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음식의 완성도보다 부엌이 북적이는 것을 선택했다.


딸이 결혼하기 전에도 함께 산적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딸은 주로 뒤집는 역할을 했고, 나는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을 입혀 팬에 올려주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음식은 내가 평소 만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밀가루를 입히고 계란물을 묻히고 굽고 뒤집는 과정에 두 사람이 함께 참여했다. 

처음으로 음식의 완성 과정 전체에 가족의 손길이 들어간 셈이다.


밥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것도 발견했다.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참여한 음식에 손을 더 많이 댔다. 

설에 함께 만든 잡채도 그랬다. 

자기가 만든 음식은 조금 더 맛있게 느껴지고, 한 번 더 손이 가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작은 이벤트를 명절마다 하나씩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행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잡채를 함께 만들고, 산적을 함께 만들고, 다음에는 또 다른 음식을 함께 만들어보면 된다. 

음식의 양을 늘리는 대신 참여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의 명절에는 음식을 잔뜩 싸들고 돌아가는 것이 노동의 대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많이 만들고 많이 가져가는 것이 정성과 풍요의 표현이었다. 

이제는 생활의 조건이 달라졌다. 필요한 음식은 언제든 살 수 있고, 

가족의 규모도 작아졌으며, 명절에 며칠씩 대가족이 함께 머무는 일도 많지 않다.


그러니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방식을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그 시대에는 그 방식이 가족을 먹이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세대가 이어진다는 것은 이전 세대의 방식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도, 모두 버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어갈 것은 이어가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지금의 삶에 맞게 다시 번역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음식의 무게가 컸다. 많이 만들고, 많이 나누고, 많이 가져갔다. 

그러면서 몸의 무게도 커졌고, 때로는 마음의 무게까지 커졌다.


나는 이제 그 무게의 순서를 바꾸고 싶다.


음식은 적당히, 노동은 가볍게, 대신 함께한 시간과 좋은 기억은 풍성하게.


많이 차리는 것보다 함께 만들고, 많이 먹이는 것보다 편안하게 먹고, 

누가 가장 많이 일했는지를 기억하기보다 함께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하는 명절이면 좋겠다.


몸은 힘들지 않고 좋은 기억은 풍성한 명절.


어쩌면 이것이 내가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새로운 명절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던 방식을 삶을 위해 다시 번역하는 것.


예전에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가족의 생활을 이어갔다면, 

이제는 적당한 음식을 함께 만들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생존의 산적에서 삶의 산적으로.


명절의 음식은 줄어들어도 명절의 기억까지 줄어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몸의 무게를 덜어낸 자리에, 함께한 시간과 관계의 기억을 더 많이 담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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