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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이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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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5 08:49 조회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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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른손 검지에 물집이 생겼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듯했다. 

그런데 물집이 언제 생겼는지 생각해 보다가 최근 내가 칼을 꽤 많이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에게 줄 김치를 담그면서 배추 두 포기를 손질했다. 

그런데 배추 두 포기는 사실 그동안 꾸준히 해오던 일이었다. 

새롭게 더해진 칼질은 산적을 만들기 위해 파 한 단을 다듬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내 손가락에게도 평소의 사용량에 마지노선이 있었던 모양이다.


배추 두 포기까지는 익숙하게 감당하던 손가락이 파 한 단까지 더해지자 물집으로 반응했다.


물론 정말 배추 두 포기가 한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이 조금 더해졌을 때 비로소 몸이 자신의 사용량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이 손가락에 굳은살이 있었던 것 같다. 

요리를 많이 하던 시절에는 칼을 잡는 일이 워낙 일상이어서 굳은살이 생기는 것조차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다. 

요리를 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손가락도 조금씩 달라졌고, 다시 칼을 많이 잡으니 이번에는 물집이 생겼다.


물집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칼을 잡았는지를.


일상이 된 노고는 노고로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하게 해온 일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익숙하게 무언가를 떠안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힘들기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도 그 힘듦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은 그 일을 직접 해보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수입이 있는 일을 해보지 않은 아내가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감당하는 책임과 긴장을 충분히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표가 잘 나지 않는 반복적인 집안일을 해보지 않은 남편은 아내가 매일 해온 수고를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누가 더 힘든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험하지 않은 수고의 무게는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집안일처럼 끝내도 흔적이 남지 않는 일은 더욱 그렇다. 밥을 차리면 밥은 사라지고, 

설거지를 하면 다시 설거지가 생긴다. 

청소를 해도 며칠 지나면 다시 해야 한다. 일을 했다는 흔적보다 일이 없는 상태만 남는다.


그러니 내가 힘들었다고 해서 상대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과 상대가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 해왔다는 사실과 그 일이 쉬운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떠안으면 그냥 해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내가 할 수 있으니 했고, 익숙하니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했는지 나 자신도 세어보지 않았다.


이번 물집처럼.


물집이 생기고 나서야 최근의 칼질을 하나씩 떠올렸다. 

몸의 작은 흔적이 내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사람들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기타를 오래 친 사람의 손가락에는 줄을 누른 흔적이 남아 있고, 

오랜 시간 어떤 일을 반복한 사람의 손이나 몸에도 그 삶의 사용처가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흔적만으로 사람을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일을 해도 몸에 남는 흔적은 사람마다 다르고,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흔적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용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무엇을 반복해 왔는가.
무엇을 익숙하게 떠안아 왔는가.
무엇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 내 노고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가 내가 익숙하게 감당해 온 범위였는가.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힘들다고 느끼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히 익숙한 일을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그 한계선까지도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물집 하나가 그것을 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자기돌봄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먼저,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를 내가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말하는 것.


표현되지 않은 노고는 자신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내가 익숙하게 해온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물집이 말해 주었다.


“네가 그동안 이만큼 사용했어.”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가 해온 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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