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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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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5 08:52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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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상대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까.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상대가 말하는 내용이 다를 때, 

우리는 쉽게 상대의 말이 틀렸거나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거짓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령 누군가가 “그 산에 갔다 왔어”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한 사람에게 ‘산에 갔다’는 것은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의미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산 아래에 다녀온 것까지 포함할 수 있다. 

같은 문장을 사용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범위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반드시 거짓말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한다.


상담을 받던 내담자가 어느 순간 상담을 중단했다가 몇 달 뒤 다시 찾아와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이 맞았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상담자는 이미 여러 회기에 걸쳐 반복되는 말과 행동, 관계의 패턴을 보고 이야기했지만, 

당시의 내담자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경험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았을 수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보고 있는 것은 같았지만, 구체성과 시간성이 달랐던 것이다.


상담자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 조금 더 넓은 시간의 흐름을 보고 있었고, 

내담자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상담자의 말이 그때는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 자신의 경험이 쌓이고 나서야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상담자는 이미 보이는 것을 말했지만, 내담자는 아직 그것을 자기 경험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 사이의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고받는 한 문장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경험, 지금의 감정, 이전에 있었던 사건, 

말하지 않은 전제들이 함께 들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문장 안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어떤 행간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를 때도 있다.


듣는 사람은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자신의 경험으로 채운다. 

그러다 보면 같은 문장을 듣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 행간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읽은 것을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문장 뒤에 무엇이 더 있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행간을 읽되, 행간을 사실로 단정하지 않는 것.


최근에는 AI와 대화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전날 네 개의 범주를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나는 그 사이에 몇 편의 칼럼을 더 추가했다는 사실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책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분류한 범주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AI가 보여준 범주는 다섯 개였다.


처음 장면만 놓고 보면 충분히 이상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범주는 네 개인데, 

AI가 다섯 번째 범주를 만들어낸 것이었으니까. 

흔히 말하는 AI의 환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어제 우리가 만든 범주는 네 개잖아”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이 범주가 추가됐네”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네 개의 범주는 실제로 잘 맞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범주가 완전히 엉뚱하게 생겨난 것이라고 단정하기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조건이 하나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잠시 한 것이다.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가면서 알게 된 것은, 

그 사이에 추가된 몇 편의 칼럼까지 포함한 전체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범주를 다시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네 범주가 틀린 것이 아니라, 새롭게 들어온 글까지 함께 바라보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하나의 흐름이 더 보였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내 딸과 AI의 환각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딸은 법조항을 예로 들었다. 

AI가 실제 법조항을 정확한 근거 없이 제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조항이나 내용이 다른 조항을 실제 법률처럼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법조항처럼 실제 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내가 모르는 조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답을 받아들일 수 없다. 

실제 조문을 확인하고,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오류라고 판단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상 밖의 답을 곧바로 거짓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과, 

근거 없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예상하지 못한 답이 나왔을 때는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조건이 하나 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 근거는 무엇일까.’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맥락이 있을 수도 있고, 

상대가 경험한 범위가 나와 다를 수도 있다.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했을 수도 있고,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시간의 흐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과 상대의 말을 무조건 믿어주는 것은 다르다.


결국 필요한 것은 판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조금 늦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이 나타났을 때,

‘내가 모르는 조건이 하나 있을 수도 있겠다.’


라고 잠시 멈춰보고, 그다음에 무엇이 다른지, 어떤 맥락이 있는지, 실제 근거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그렇게 보면 거짓말은 단순히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닐 수 있다.


어떤 것은 다른 경험에서 나온 말일 수 있고, 어떤 것은 서로 다른 범위와 시간성을 가진 말일 수 있으며, 

어떤 것은 내가 아직 모르는 맥락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정말 근거 없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빨리 거짓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 것.

그리고 충분히 살펴본 뒤에도 근거가 없다면, 그때는 그것을 오류나 거짓이라고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


다름과 거짓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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