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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어 있지만 대신 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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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6 19:20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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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모습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한때는 여러 세대가 한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이 자연스러운 가족의 모습이었다. 

이후 부모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이 익숙해졌고, 

이제는 핵가족이라는 틀만으로도 가족의 모습을 다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며, 

한부모 가족이나 재혼가족,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처럼 가족을 이루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은 더 이상 하나의 정해진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족의 형태가 달라진 만큼,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과 관계의 언어도 함께 달라졌을까.


어쩌면 이 질문에서 지금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혼란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현실에서는 각자의 가족 단위로 살아가면서도, 

중요한 가족행사가 되면 오래된 대가족의 정서를 다시 불러내곤 한다.


‘집안의 어른이니까.’

‘가족의 큰 행사니까.’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해야지.’


이런 마음에는 가족을 이어주고 서로를 배려하려는 따뜻함이 있다.


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가까운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고, 

서로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관계를 이어가는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의 언어에 구조의 언어가 섞일 때 생긴다.


나이가 많다는 것과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 어느 순간 같은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족의 행사에 함께하는 것과 그 행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일인데, 

어느 순간 ‘어른의 자리’가 ‘결정할 수 있는 자리’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 아랫사람의 자율적인 선택은 존중받지 못한 것이 되고, 

윗사람의 개입은 어른으로서 당연한 역할이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족 안에서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는 것과 서로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것이다.


가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어떤 가치와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할 몫이 있다. 

이전 세대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의견을 나누는 것과 결정을 대신하는 것은 다른 일일 것이다.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도 있다. 

때로는 젊은 세대의 선택이 낯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과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기에서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관계의 언어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네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은 네가 결정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

“어른의 마음을 존중하지만, 우리의 삶에 관한 결정은 우리가 하고 싶다.”


이런 말이 가능해지는 관계.

존중하면서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관계.


가족의 형태가 변한다는 것은 단순히 함께 사는 사람의 숫자가 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 안에서 누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지, 서로에게 어느 정도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어른의 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함께 달라져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 변화를 지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가족은 이미 많이 달라졌는데,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직 이전 시대의 가족 언어가 남아 있다.


그래서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서도 경계를 어디에 그어야 할지 어려워한다.


가까우면 어디까지 관여해도 되는 것인지,
어른이라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가족이라면 어디까지 서로의 선택을 살펴야 하는 것인지.

아직 모두가 공유하는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가족 형태를 옳다고 정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한 가족 안에서 서로의 자리를 다시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윗사람은 자리를 지키되 권한을 독점하지 않고,

아랫사람은 자율성을 갖되 관계를 끊지 않는 것.

어른의 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랫사람의 자율성을 이기적인 독립으로 보지 않고, 관계를 끊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힘으로 바라보는 것.


그렇게 되면 가족은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존중한다.
그러나 당신의 삶을 대신 살지는 않는다.

당신도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 삶을 대신 결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가족의 성숙은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결되어 있지만 대신 살지 않는 것.


서로의 삶을 존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삶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가족의 새로운 언어는
그곳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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