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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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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7 18:23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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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큰 것들을 보았다.


삶의 구조, 관계의 문제, 상처와 책임, 생존과 존재처럼 한 사람의 삶을 크게 움직이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글을 쓸 때도 큰 주제를 붙잡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했다.


아마 그때는 선명하게 바라보는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 안에 작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빛, 물방울, 바람, 작은 소리.


처음에는 그 변화가 글에서만 일어난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내 생활에서도 이미 비슷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 집에는 작은 것들이 별로 없었다.


젊었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편했다. 

작은오빠와 함께 살 때 오빠가 작은 물건들을 사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고, 나도 그 말에 수긍했다.


작은 물건은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이 되고, 옮기는 데 번거롭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작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삶에서 밀려났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도 그 감각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집을 몇 번 옮기고 집을 사기도 했지만, 필요한 것은 갖추되 작은 것들은 많이 두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는 꽤 자연스러운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엄마, 집에는 작은 게 없어.”


그 말을 듣고서야 집 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정말 작은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전에는 없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필요한 것들이 있으니 집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작은 것들을 조금씩 사게 되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작은 물건을 들이고, 

작은 소품 하나를 놓고,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에게도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면서 물건을 대하는 내 안의 기준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집에 작은 물건을 들이기 시작한 것과 

요즘 글에서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같은 변화였는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그동안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면, 

글에서는 이야기의 배경에 머물러 있던 장면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구조가 작동하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려고 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큰 이야기를 조금 거칠게 붙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안에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 하나가 들어오고,
물방울 하나가 맺히고,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고,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렸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큰 것을 충분히 바라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고 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큰 이야기 속에 묻혀 있던 작은 장면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았던 한 조각이 오히려 전체의 흐름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것을 힘주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조금 덜 붙잡고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의미를 찾기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면, 

이제는 조금 물러서서 바라볼 때 오히려 들어오는 것들도 있다.


어쩌면 균형이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무엇을 똑같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붙잡지 않는 것.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옆에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아직은 작은 것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오면 처음에는 그것이 유난히 눈에 띌 테니까.


집에 작은 물건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던 것처럼, 

글에도 작은 것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은 것들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깊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때는 아마 내가 오래 바라보아온 것들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이다.


더 이상 크게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힘을 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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