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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놓아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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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7 20:57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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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릴 때의 돌봄은 내가 대신해주는 일이 많았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가야 할지,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지 함께 결정하고 때로는 아이보다 먼저 걱정했다. 

아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고, 아직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고 자기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돌봄의 모습도 달라졌다.


한동안은 그 변화를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낯선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몇 마디 걱정 섞인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방식이 달라졌다.


어떤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어떻게 판단했고 무엇을 했는지까지 함께 이야기했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스스로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고, 상태가 좋아졌는지 확인했다.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언제 어떻게 도움을 받을지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알게 되었다.


이제 이 아이는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구나.


그 순간 부모에게는 묘한 변화가 생긴다.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삶에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물질적으로 더 갖추어야 할 것도 있고, 앞으로 선택해야 할 일도 있다. 

결혼처럼 부모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는 과제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통화를 마치고 나니 이상하게 걱정보다 안심이 되었다.


과제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이가 자기 삶에서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오히려 내가 조금 설명을 들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내가 무엇을 알려주고 안내하고 조언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이제는 서로 각자의 삶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내가 알려준 것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생각과 판단의 뼈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연락하는 방식도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안부를 확인하고, 잘 지내는지 물어야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자기 이야기를 알아서 전해주었다.


아픈 일이 있었으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야기했고, 

휴가가 있으면 무엇을 하며 보낼지도 미리 이야기했다.


“휴가가 있어.”


라고만 말하고 끝냈다면 나는 아마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자신의 휴가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계속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잘 돌보는 방식은 나에게도 하나의 돌봄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살피고, 필요한 일을 스스로 처리하고, 

자신의 일상을 자기 방식으로 채워가는 것.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마음을 놓을 수 있으니까.


좋은 돌봄은 많이 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필요할 때 도와주되, 상대가 자기 삶의 주어가 될 수 있도록 조금씩 자기 자리로 돌려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상대가 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돌보지 않아도 자녀가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는 것.


그때 돌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아이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힘으로 남고,

부모에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자리로 남는다.


생각해보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은 그대로 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아이에게 자기 삶을 살아갈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다.


어쩌면 좋은 돌봄이 부모에게 남기는 가장 작은 행복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더 해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 말은 사랑이 줄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사랑하기 때문에 이제 상대의 삶을 상대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돌봄의 처음에는
내가 너를 돌본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네가 너를 돌보는 것을 내가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네가 너를 돌보는 것을 믿으며
나도 내 삶으로 돌아온다.


그때 비로소 돌봄이 놓아준 자리가 생긴다.


누군가를 더 이상 붙들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 사람의 삶을 걱정으로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문득,

작은 행복 하나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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