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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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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8 08:33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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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선명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 강의가 있었다.


나와 다른 강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강의실로 갔고 나는 내가 들어가야 할 강의실을 찾아갔다.


건물은 크고 오래된 유럽의 건축물처럼 아름다웠다. 

꽃처럼 보이는 장식들이 있었고, 강의실로 가는 길에는 계단이 많았다.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 외에도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강의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당황스럽지 않았다.


‘준비가 안 되었는데 어떡하지?’ 하는 불안보다
‘그냥 내가 가진 것으로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들어온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더라도, 

준비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살아온 경험으로 하면 된다는 듯했다.


강의실이 나를 강사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이 나를 강사로 만들고 있었다.


강의실의 의자는 조금 특이했다.


의자 대신 돌이 놓여 있었다.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큼 큼직한 돌 네 개.


모서리는 닳아 매끄러웠고, 표면에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무늬가 있었다.


그런데 나를 지켜보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돌 네 개를 모두 가져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돌들을 가져가려는 마음을 먼저 알아차렸다.


그래서 말했다.


“그 돌을 가져가려면 다른 돌을 가져다 놓고 가져가세요.”


꿈속에서는 그 말이 아주 당연했다.


돌을 가져가는 것 자체를 막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자리를 비워둔 채 가져가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특히 이상했던 것은 내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누군가는 내가 앉을 자리를 이루고 있는 돌들을 가져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그 자리에서 필요한 말을 했다.


그 담담함을 생각하다 보니 ‘공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단어를 따라가자 오래전의 장면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스물다섯 살 무렵, 귀금속 매장을 운영하던 때였다.


내가 사용하던 공간의 조건이 달라졌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결국 그곳을 떠나야 했다.


그때의 나는 귀금속을 다루는 기술과 장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펼칠 공간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


공간의 조건이 달라지면 내가 가진 것까지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내가 어디에 머물 수 있는가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상담센터를 처음 열었을 때도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랫층에서 음식 냄새가 올라오고, 옆에서는 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우당탕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내가 마치 어딘가에 셋방을 얻어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공간의 초라함이 어느 순간 내 초라함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내가 누구인지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나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번에 공간과 관련된 일이 생겼을 때도 그 오래된 감각의 한 부분이 다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꿈속의 나는 달랐다.


그곳에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것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상담을 하면서도 나는 오랜 시간 준비된 답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삶을 함께 들여다보고, 그 자리에서 필요한 언어를 찾아왔다.


상담의 끝에서 내가 이해한 것을 몇 마디의 언어로 정리해 건네는 순간도 있었다.


어쩌면 꿈속의 강의는 그렇게 오랜 시간 내 안에 쌓인 것을 밖으로 건네는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그 돌이 떠올랐다.


누군가 가져가려고 했지만 아직 가져가지는 않은 네 개의 돌.


나는 빼앗긴 뒤에야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가져가기 전에 그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막연히 붙잡은 것이 아니라 말했다.


“다른 돌을 가져다 놓고 가져가세요.”


예전에는 공간의 조건이 달라지면
내가 가진 것까지 함께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필요하다면 머물 수도 있고, 옮길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나를 보호해주는 제도도 있고, 

다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오며 쌓아온 것은 공간을 옮긴다고 두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담을 공부해온 시간, 사람을 만나온 시간, 수많은 관계와 경험 속에서 배우고 다시 바라본 시간.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공간은 바뀔 수 있고, 자리도 옮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누군가의 공간에 맡겨둘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 꿈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돌의 의미를 생각했고,
공간의 의미를 생각했고,
오래전의 기억과 지금의 상황을 연결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주 단순한 문장에 닿았다.


강의실이 나를 강사로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공간이 나를 상담사로 만들어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이 나를 그 자리에 있게 했다.

나는 그 공간에 들어갈 때부터 나였고,
그 공간을 나오게 되더라도 여전히 나일 것이다.


공간은 나를 담을 수는 있지만
나를 규정할 수는 없다.


이 생각에 이르러서야
나는 내 입으로 아주 단순한 말을 하나 꺼내게 되었다.


나는 나다.


이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의 자리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 다시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


어쩌면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내가 이제야 내게 돌려준 가장 단순한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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