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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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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20 07:48 조회20회 댓글0건

본문


집의 실내 구조를 그린 그림을 보다 보면
방의 크기나 가구의 배치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문이다.


문이 있는지,
문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
그리고 그 문을 내가 원하는 때에 닫을 수 있는지.


문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내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구분하고,
필요할 때 거리를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경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은 있어도 문고리가 고장 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닫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경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다.


경계는 벽처럼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에 가깝다.


가까이 있고 싶을 때는 문을 열 수 있고,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문을 닫을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문이 항상 닫혀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그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가이다.


어떤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사랑이나 배려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절이나 거리 두기를 이기적인 행동으로 여기기도 한다.


“가족이니까.”
“좋게 좋게 넘어가면 되지.”
“조금만 양보하면 되잖아.”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
자신의 불편함이나 거절을 관계를 깨뜨리는 행동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문을 닫을 권리를 배우지 못하면

타인의 문을 존중하는 법 역시 충분히 배우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경계를 침범당한 사람이 반드시 다른 사람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경험 그 자체보다
그 경험을 통해 어떤 관계의 규칙을 배웠는가이다.


나는 불편해도 참아야 한다고 배웠는지,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해도 관계가 반드시 깨지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는지,
혹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배웠는지에 따라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때로는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과 ‘관계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 혼동되기도 한다.


갈등을 조절하고 서로의 입장을 연결하는 것과
누가 관계 안에 들어오고 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진정한 중재는 다른 사람의 문을 대신 닫아주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경계에는 상호성이 있다.


내가 닫을 수 있다면 너도 닫을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싫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너의 “싫어”도 존중해야 한다.


내가 멈춰 달라고 말했을 때 상대가 멈춰야 하듯,
상대가 멈춰 달라고 했을 때 나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경계를 배운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더 높은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내 문을 닫을 수 있는 힘과
다른 사람이 닫은 문 앞에서 멈출 수 있는 힘을 함께 배우는 일이다.


어쩌면 마음의 평화도 그 사이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방이 아니라,
내가 원할 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방.


그곳에서야 비로소
혼자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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