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비용은 무엇으로 결정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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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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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맺다 보면 비용이 발생한다.
누군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다면 그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단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비용에 대한 생각은 그다음에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 먼저 내고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내는 방식을 편안하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정확히 나누는 것이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같은 방식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누군가 “내가 낼게”라고 말하는 것이 따뜻한 배려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상대를 위아래로 구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반대로 1/n로 정확하게 나누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계산적인 관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계에서 비용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용은 단순히 경제적인 여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성장하면서 익숙해진 관계의 방식이 있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으며, 현재의 경제적 상황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인색하면 안 된다’는 기준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을 수 있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 것을 불편하게 느껴서 가능한 한 정확하게 나누려고 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돈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비용을 나누는 방식에 비교적 자유롭게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경제적인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누군가가 비용을 나누지 않는 것이 인색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지갑을 열 여유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반대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더 많이 부담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하나의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이나 관계에 대한 태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관계에서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은 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는 것, 상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는 것, 감정을 받아주는 것,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맞춰주는 것,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것 역시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용일 수 있다.
특히 어떤 역할에 익숙한 사람은 그 역할을 비용으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늘 듣는 사람인 사람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늘 이해하는 사람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을 자신의 몫처럼 생각한다.
배려하는 사람은 먼저 맞추는 것이 익숙하고,
책임을 많이 지는 사람은 책임을 나누는 것보다 자신이 가져오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익숙하다는 것은 때로 비용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나 역시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기 전부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맞춰주는 위치에 익숙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어떤 비용을 발생시키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오히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관계에서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다른 위치에 있어도 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관계 안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자리가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쩌면 관계의 유연성은 ‘원래 유연한 성격’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포지션에 있어본 경험이 있어야, 위치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듣는 사람으로만 살아온 사람에게 누군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낯설 수 있다.
늘 배려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상대의 배려를 받는 자리는 불편할 수도 있다.
늘 책임지는 사람에게 책임을 내려놓는 것은 무책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머리로는 ‘서로 역할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어도,
실제로 다른 자리에 있어본 경험이 없다면 그 자리는 쉽게 선택되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의 상호성은 반드시 1:1의 교환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내가 더 많이 내고, 다음에는 상대가 더 많이 낼 수도 있다.
오늘은 내가 들어주고, 다음에는 내가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어떤 때는 내가 상대를 배려하고, 어떤 때는 상대가 나를 배려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늘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한 자리에만 고정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늘 한 사람이 지불하고 다른 사람은 받는 관계,
늘 한 사람이 이해하고 다른 사람은 이해받는 관계,
늘 한 사람이 결정하고 다른 사람은 따르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위치가 계속 가능할 때는 관계가 안정되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 관계가 흔들린다면, 어쩌면 그 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기보다
서로에게 익숙했던 특정한 위치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산보다 위치를 움직일 수 있는 여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을까.
누군가와 만난 뒤 돈을 얼마나 썼는지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을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감정과 역할을 사용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산을 하고 난 뒤 마음에 불편함이 남는다면 잠시 멈춰볼 수 있다.
이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일까.
혹시 성장하면서 익숙해진 관계의 방식은 아닐까.
‘베풀어야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 때문은 아닐까.
‘남에게 빚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사회나 문화가 자연스럽게 가르쳐준 관계의 규칙은 아닐까.
아니면 지금 나의 경제적 현실이나 현재의 필요에 따른 선택일까.
익숙하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내가 베푸는 것이 좋다면 계속 베풀어도 된다.
정확하게 나누는 것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습관처럼 선택하고 있는지, 지금의 내가 알고 선택하고 있는지일 것이다.
반복된 행동은 물길을 만든다.
오랫동안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다시 같은 행동을 한다면 어느새 그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깊어진다.
하지만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다음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면 작은 샛길이 생긴다.
처음부터 기존의 물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길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몇 번 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꼭 이 자리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관계의 비용은 누가 더 많이 냈는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을 비용으로 여기고 있는지, 왜 그것을 내가 부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비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지가 관계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어쩌면 오래 지속되는 관계란 서로가 늘 같은 만큼을 내는 관계가 아니라,
필요할 때 서로 다른 자리에 설 수 있고, 그 자리를 옮겨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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