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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타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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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3 13:10 조회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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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생긴다.


어떤 상황에서는 기다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말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물러서고,
어떤 상황에서는 움직인다.


경험이 쌓일수록
삶을 다루는 방법의 목록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지혜일까.
아니면 경험이 많아져서
그저 여러 가지 방법을 갖게 된 것일까.


배를 모는 조타수를 생각해본다.


조타수는 바다를 통제하지 않는다.


바람을 멈출 수도 없고,
파도를 없앨 수도 없다.

그렇다고 파도에 배를 맡겨버리지도 않는다.


바다가 흔들리면
그 흔들림을 알아차리고,
배가 어느 방향으로 밀리고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키를 움직인다.


이것이 어쩌면 자기조절과 닮아 있다.


자기조절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치는데
“배가 흔들리면 안 돼”라고 말하며
파도를 멈추려는 것도 아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난 것을 알고,
두려우면 두려운 것을 알고,
무언가를 원하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감정과 욕구를 느끼되
그것이 곧바로 배의 방향이 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느끼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드는 것.


그 틈에서 조타수가 키를 잡는다.


예전에는 자기조절을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을 다스린다는 말에는
자칫 감정을 눌러야 한다는 뜻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파도가 치는데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키를 너무 세게 붙잡는 것과 같아진다.


반대로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
그 감정이 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이번에는 키를 놓아버린 것과 같다.


억누르는 것도 아니고
맡겨버리는 것도 아니다.


파도를 느끼면서 키를 잡는 것.


그 사이에서 자기조절이 생겨난다.


돌이켜보면 나도 오랫동안
자기조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
감정과 행동을 잘 조절하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실제로 조타수의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너무 오래 억눌렀고,
때로는 반대로 너무 많이 드러냈다.


한쪽을 지나고 또 다른 한쪽을 지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다.


중도는 배를 바다 한가운데에 세워두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과 파도에 따라
계속 방향을 조금씩 조절하면서도
내가 가려는 방향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도는
‘중간’과도 달랐다.


중간이 양쪽 사이의 어느 지점이라면,
중도는 지금의 바다를 읽고
필요한 만큼 움직일 수 있는 방식
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혜도
방법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 많아져
여러 가지 방법을 갖게 되는 것과,

지금 이 순간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조타수는 모든 바다에 같은 방법을 쓰지 않는다.


파도가 높으면 키를 더 움직이고,
바다가 잔잔하면 힘을 덜 준다.


때로는 기다리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바다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최근 경험한 자기조절도
이와 비슷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읽는 것.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에게
내 배의 방향을 전부 맡기지 않는 것.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알아차리고도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를 내가 선택하는 것.


파도는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키를 잡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생긴 것인지,

양극을 충분히 경험하면서
방법을 넘어 바다를 읽는 감각이 생긴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을 찾았다면,


지금은 먼저 묻게 된다.


지금 내 바다는 어떤가.


그리고 그 답에 따라
조금 기다리기도 하고,
조금 움직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조타수의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읽으면서 내 배의 방향을 잡는 것.


그리고 어쩌면 자기조절이란
바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나를 놓아버리지 않는 것.
파도를 느끼면서도
내 손으로 키를 잡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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