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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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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원심리상담센터
작성일26-09-13 15:13 조회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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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마당 한켠에는 우물이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면 우물물을 끝까지 퍼내곤 했다. 

돌에 물때가 끼거나 물속에 새로운 생명체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을 계속 퍼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물 바닥이 드러났다. 

물이 다 빠지고 나면 가장 아래에 놓인 돌들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돌들 사이에서 물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주변의 작은 모래까지 깨끗했다.


우물의 물을 다 퍼냈는데도 물이 다시 생겨났다.


그때는 그 장면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문득 그 우물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마음에는 많은 것들이 고인다. 

상처와 억울함, 미움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처럼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이 오래 머물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들이 너무 오래 쌓여 있어서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마음을 서둘러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미워할 수 있게 하고, 화낼 수 있게 하고, 억울해할 수 있게 하고, 슬퍼할 수 있게 한다.


상담사는 그 마음을 판단하거나 서둘러 다른 감정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자신의 마음에 고여 있던 것을 충분히 퍼낼 수 있도록 안전하게 곁에 있는 것이다.


그 관계 안에서 상담사가 건네는 것은 어쩌면 깨끗한 물과도 같다. 

수용하고, 견디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관계가 내담자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오히려 더 탁해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가라앉아 있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것이 올라오기도 한다.


상담사가 긍정을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었잖아요”라고 말해서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난 뒤, 어느 순간 스스로 말한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이런 건 잘했어요.”


그 말은 상담사가 넣어준 긍정이 아니다.


자기 마음에 고여 있던 물을 충분히 퍼낸 뒤, 그 아래에서 스스로 발견한 물이다.


나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사람 안에는 이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긍정적인 생각이나 좋은 성격 같은 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사랑할 힘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일 수도 있으며, 

이제는 더 이상 견디지 않겠다는 경계일 수도 있다. 

때로는 슬픔을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힘이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상담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린 시절 우물에서 물을 다 퍼냈다고 해서 샘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물이 솟아날 수 있는 근원이 이미 그 아래에 있었고, 물을 퍼내고 나서야 그것이 눈에 보였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상처와 두려움, 억압과 체념이 마음을 오래 덮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덮여 있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담은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닿지 못했던 마음의 깊은 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인지도 모른다.


샘은 상담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샘의 근원은 이미 그 사람 안에 있다.


다만 그것이 올라올 수 있을 때까지,
마음에 고여 있던 것을 충분히 퍼낼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맑은 물이 올라왔을 때,
그 물을 처음 발견하는 사람은 상담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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